이 영화에는 필자가 살아온 이력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욕설과 단어가 난무한다. 이런 욕과 은어는 ‘뺑끼통’이란 소설 이후 처음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 초등학생이었던 거 같다. 이때는 가끔 큰언니나 아빠가 읽는 소설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뺑끼통’은 진짜  읽으면서 더럽고 무서운 기분이 들었던 거 같다. -- 년도를 정확히 기억해보려고 인터넷 교보문고에 갔더니 검색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나... 네이버에도 없고, 그런 책이 있기는 했던 걸까--

‘넘버3’ 선생의 말투는 거칠다. 보통이 씨-발이고, 기분 좋으면 좆-까라고 하고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필자가 2002년 시나리오를 배운다고 설레발이 칠 때부터 배운 게 많다. 포카, 화투, .... 그리고 욕설. 사실 지금 영화를 보니 이해가 더 빠르다. 다찌마리, 쌈마이 이런 단어가 친숙하니 말이다.

요즘 같이 뱃살에 기름이 잔뜩 든 영화를 볼 때면, 이런 영화가 생각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형식만 새 것으로 만들지 말고, 내용도 새로웠으면 좋겠다. -- 내용이 새롭다는 것은 물론 새로운 소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내러티브 ? 없어도 좋다. 그렇지만 변화의 측면이 스타일에서만 나타났다는 데서 실망이 크다. 세상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던가 새로운 정신의 추구란 면에서 나타났다면 매우 기뻤을 것이다. 스타일리쉬한 장면들이 기존의 가치관을 지지하고 구조적인 억압과 편견을 강조한다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넘버 3’의 긍정적인 측면은 뭐니뭐니해도 구어체 대사의 확실한 자리매김이다. 부정적인 면은 역시나 조폭영화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여기서 조폭들은 멋지게 묘사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3류라고 칭하지 않았던가.

오늘 나는 요즘의 멋들어진 영화들을 불러놓고 ‘무대뽀 정신’을 설파하신 ‘넘버3’ 선생을 모셔 오고자 한다.

먼저 시나리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등장인물을 소개하겠다.


태주(한석규) : 도강파 깡패 넘버 3맨 
현지(이미연) : 태주애인
마동팔(최민식) : 검사
조필(송강호) : 뜨내기 조직 
지나(방은희) : 강도식의 처
강도식(안석환) : 도강파 보스
재철=재떨이(박상면) : 도강파 2인자

S#54. 여관/조필방

 꼼꼼히, 영수증을 체크하는 조필- 무릎꿇고 앉아있는 불사파.


   조필 : 생활비... 얼마 남았나?


 통장을 살피는 얼큰-


   얼큰 : 14만원 남았습니다.


 조필 표정이 밝지 않다.


   얼큰 : 저희가 막노동이라도 뛰겠습니다. 형님.


   조필 : 건달을 불한당이라고도 한다. 아닐불, 땀한... 땀을 안흘린다

          는 뜻이야. 조금만 더 버티자. 조만간 일거리가 들어오겠지.

          자, 결산하자.


 불사파, 수첩과 필기구 꺼내고, 자세를 바로 한다. 조필 정신교육을 시작한다.


   조필 :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헝그리 정신에 관해서다. 헝그리...

          배가 고프다는 뜻이지. 에이치 유 엔. (포기) 너희들이 벌써 일주

          일째, 짱개, 컵라면으로 때우는거 안다. 물론, 흰 쌀밥에 고깃

          국먹고 싶겠지. 그걸 참는것도 일종의 훈련이다.


 불사파는 조필이 떠드는 것을 부지런히 수첩에 적는다.

얼큰의 수첩엔 (불한당... 땀, 안흘린다... 헝그리... 에이치 유 엔.)등등이 적혀있다.


   조필 : 너희들, 한국 뽁싱이 잘나가다가 요즘은 왜 빌빌대는지 아냐?

          다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엔 다들 라면만 먹고도,

          챔피언 먹었다. 뽁싱뿐만 아냐. 그, 누구야, 현정화도 라면만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을 세 개나 땄다. 그말이다.

   말복 : (주책없이) 임춘앱니다. 형님


 동시에... 말복을 빰을 후려치는 조필... 두차례... 세차례... 일어나발길로 몇차례 팬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조필... 스스로 격앙되어... 방안에 있는 물건들을 총동원하여..말복에게 던지고, 패기 시작한다...

구두, 라면, 과일 간식거리, 비디오, 마침내... 더 던질게 없자.

이불장을 열더니, 두터운 이불을 꺼내 그걸 내던지는 것으로 구타의 쎄레모니가 끝난다.

정확히 48초간의 구타... 사색이 되어 차마 보지도 못하는 얼큰, 초복...

무릎이 덜덜덜 떨린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이불에 덮힌채...

코피가 터지고 엉망이 된채 비는 말복 순간적으로 난장판이 되버린 방안..

그리고 20초간의 감정조절.. 무거운 침묵이 방안을 감돈다.


   조필 : 잘들어라. 내가 하늘이 빨간색이다 하면, 그 순간부터 하늘은

          빨간색이야, 내가, 현정화라면 현정화다. 내말에 토다는 새-끼

          는 배반형이야. 앞으론 직사시킨다. (다시 강의톤으로-)암튼,

          그런... 그러니까... (무슨말을 했는지 까먹었다. 추가로 말복

          뺨을 한 대 때리고-) 너 때문에 까먹었잖아 새꺄!

   얼큰 : 헝그리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조필 : 그래 헝그리정신이 건달에겐 필요하다 그말이야. 니들... 조만

          간 잘 나갈거다. 뺀츠타고, 룸싸롱을 안방드나들 듯 하게 될거

          야. 그때도,  지금 짱개먹는 시절,  지옥훈련에 식량이 떨어져

          뱀잡아 먹던 시절을 잊어선 안된다.  끝으로 내가 늘 강조하지

          만, 모든걸 열심히, 진지하게 해야한다. 내가 늘 강조하지만..

          잠자는 개한테 햇빛은 결코 비추지 않아!



위 54씬에서 직접적으로 ‘헝그리정신’에 대해서 언급이 나온다. 그것이 깡패들 입을 통해서 나온다는 것이 사실 어불성설이다. 하여튼 돈 없고 힘 없고 가진 것 없지만 깡 하나로 버텨보겠다는 것은 본뜻과 일맥상통한다.

영화에서 인격이 부여된 주목할 만한 인물 3명을 꼽아본다면 , 태주(한석규)와 조필(송강호)과 재떨이(박상면)이다. 태주는 말 그대로 넘버3이자 햄릿형인 인간이고, 조필은 뭐든지 하면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며, 재떨이는 무조건 하는 인간이다.

태주는 아래 64씬에 나오듯이 조폭을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생활인이다. 새-끼 낳고 마누라랑 알콩달콩 살아보겠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 보통사람이다. 재떨이도 단순 무식하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사내다. 둘 다 나름대로 진지한 면이 있다. 


S364. 현지 아파트

. . .(중략). . .


   현지 : (조심스럽게-) 오빠... 우리... 아이하나 갖으면 안될까?

   태주 : 나... 꽤맸다고 했잖아.

   현주 : 실밥 풀면 돼잖아. 한 이백 주면 풀수있대.

   태수 : 아직안돼.

   현지 : 왜?

   태주 : 칼 한자루 들고 이바닥 헤멘게 십오년이야...

          넘버원 한번은 해야지... 그때까지만 참아...

   현지 : 깡패두목 되는게... 그렇게 중요해?

   태주 : 임마, 나두 너만큼, 내 새-끼 면회하구 싶은 놈이야.

          알잖아...

   현지 : 그러니까 빨리 면회하자, 응?

   태주 : 너... 건달 영화에 왜 애들이 안 나오는줄 알아? 새-끼가 있으

          면 마음이 약해 지거든.

          마음이 약해지면... 건달은 끝이라구...

   현지 : .....

   태주 : 조만간.... 넘버원이 될거야.... 쬐금만 더 기다려....

   현지 : 그럼 나는... 내인생은 뭐야? 오빠, 내 인생은 생각해 봤어?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하면서 살란 말이야!... 매일밤 오빠 기

          다리면서 내가 얼마나 조마 조마한지  알기나 해?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칼 맞았을까? 병원

          일까 싶어서... 그런걸 알기나 하냐구?  (감정이 격앙되며 눈

          물이 맺힌다. 일어나며-) 이런식으로 더는 못살아!

   태주 : (잡으며-) 왜 이래?

   현지 : (손을 뿌리치며, 외치듯-)깡패영화에 왜 아이들이 안나오는줄

          알아? 깡패들한테 미래두, 희망두 없기 때문이야! 알아?


 안방문을 부서질 듯 닫고 들어가는 현지.

 태주, 안풀린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다. 포도주를 병채로 들이키고는-

 듣던 말던, 자신의 심정을 토해내듯 큰소리로-


   태주 : 니까짓게 뭘알아!.... 집도 절도, 핏줄도 없는놈이 칼 한자루

          들고 살아온 심정을, 니가 뭘 아냐구! 시발!  난 뭐 안무서운

          지 아니? 나두 다 때려치고 싶어, 임마... 어디 바닷가같은데

          가서 새-끼 키우면서 맘편히 살구 싶다구!

          그게 맘대로 안되는걸 어떡하란 말이야!


... (중략) 


반면에, 송강호가 멋지게 연기해준 조필은 여기서 조직폭력배를 희화화한 인물이다. 이미 한차례 친구인 태주를 살려줄 정도로 인간적이고, 부하들을 아끼는 것 같다가도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인다. 이 인물은 정말로 미워할 수 없는데, 아래 72씬 중국집 장면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S#72. 중국집(밤)

. . .(중략). . .

   조필 : 짱개(중국음식)는...  이걸 마지막으로 끝내겠다.

          내일부턴, 흰쌀밥에 고기국 먹던가, 콩밥을 먹던가 둘중의 하

          나다. 너희들이 하기에 달렸다.


 묵묵히... 짱개를 먹는 불사파.


   조필 : 일 들어가기전에. 끝으로 한마디만 하겠다.  최영의라는 분이

          있다. 전세계를 구름처럼 떠다니면서, 맞짱을 뜨신분이다. 그

          양반이, 황소 뿔도 여러개, 작살내셨다.

          이런식이다. 딱, 소 앞에 서면 말이야.

          너 소냐? 나 최영의다.! 그리곤 소뿔을 탁잡고 가라데로 좆나

          게 내려치는거야. 소뿔이 부러질때까지...


 침묵속에 경청하는 불사파.


   조필 : 사람하고 붙을때도 그런식이다. (시늉하며-) 너, 존슨이냐?

          나 최영의다! 무조건 걸어가는거야! 죤슨이 겁나니까,  팔로

          막거든. 그럼 씹새-끼야, 팔은 니살 아니냐? 하면서 또 좆나게

          내려치는거야. 팔을 치울때까지... (보리차 한잔 마시고)

          그런 무대뽀 정신.... 그게 필요하다.

이 무대뽀정신은 ‘한’이라는 정서와 더불어 한국인의 정신적인 세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해서 ‘서편제’같은 영화만큼이나 이런 무식한 영화들이 한국영화답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식 영화, 유럽식 영화, ... 하다못해 미국영화까지도 특성이 있는데 한국영화는 도무지 구별이 안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 ‘넘버3’를 권해주고 싶다.

그 무대뽀정신이 오늘 우리를 만들기도 했으며, 우리를 무너뜨리게도 했다. 무대뽀정신은 결과를 중요시해서 과정을 무시하게 만든 점이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쓴 이전 세대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다시 보면서, 왜 태주가 배신을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적어도 영화속 화면에서는 그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이 나오질 않는다. 시나리오에서는 68씬에서 약간 힌트가 나오고 94씬에서 설명이 되고 있다.

이러나 저러나 어차피 삼류였다는 주인공의 고백이 웬지 허무해진다.

S#68. 수목림, 깊숙한 곳


 태주, 비장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상념에 잠긴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쟈크, 곰, 땀을 흘리며 곡괭이질, 삽질을 하고 있다. 구덩이가 완성 되었다.

 태주 POV로- 그제야 그 앞에, 재갈이 물리고, 두손이 뒤로 묶인채 꿇어

앉혀져 있는 마동팔.... 저항하다 다친 듯 붓고, 피가 굳어있고... 몰골이 엉망이다.


   자크 : 끝났습니다.....

   태주 : 차에 내려가 있어라... 이놈은 내가 파묻겠다.


 쟈크, 곰 삽한자루만 남겨놓고, 연장을 챙겨들고 숲길을 내려가 사라진

다.

 태주, 담배를 두 개피 문다. 불을 붙여, 한 개피를 마동팔의 재갈을 풀

고 입에 물려준다. 칼을 꺼내, 묶은 밧줄을 끊는다.

 마동팔, 팔목을 만지며 여유를 찾는다.

 태주, 권총을 꺼내... 총알을 한발씩 한발씩 천천히 장전한다.


   태주 : 날 원망하지 마라, 사적인 감정은 없다...

   마동팔 : (담배를 질겅거리며)좆-까는 소리 말고, 땡겨! 분명히, 이건

            알아둬라. 톱니하나 빠졌다고, 공장이 스톱하진 않아. 그게

            조직이야. 대한민국에 검사가 천백명이야.  매년  구십명씩

            생겨나고...  수사는 계속될거고.  니들은 어차피 작살나게

            되있다.


 묵묵히 노리쇠를 장전하는 태주.....


   마동팔 : 너도 톱니에 불과해...  조직이 키우는 놈한테 피를 묻히게

            하진 않지... 당장 깨져도 후회는 없다.

            3류인생이지만 열심히 살았으니까.

   태주 : 3류라고 생각하나?  너도?

   마동팔 : 그러니까 너같은 깡패새-끼들이나 다루지...

            1류들을 다뤄야... 인터뷰공세도 받고, 매스컴도 타고 하는

            데 말이야. 난 성질이 좆같아서 1류 되긴 어차피 텃지.


   태주 : 유언 끝났나?


 동시에 그대로 마동팔의 이마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 버리는 태주-

 빵- 빵- 빵- 빵- 빵-... 가차없이 무표정하게-

 정적을 울리며- 빠방- 총성이 울리고-

 놀란 새들이 푸드득...새벽하늘을 가르며 날라간다.


S#94. 현지의 아파트 안방(밤)


 묵묵히 앉아 담배를 피우며 테레비를 보고있는 태주.

 현지가... 솜옷,담배,돈을 넣은 징역보따리를 가지고 나온다. 내려놓고

태주옆에 앉는다.

 태주, 묵묵히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POV로- 텔레비젼에선 대권주자들

의 동정뉴스가 방영되고 있다.


   현지 : 솜옷하고, 담배하구... 50만원 넣었어.....

          (잠시 침묵-) 몇년쯤 기다려야 해?

   태주 : 몰라... 한 4년... (잠시 침묵)... 안죽으면... 보복할꺼야.

   현지 : 오빠... 한가지 궁금한게 있어... 지금도 51프로야?


 텔레비화면에 여전히 흐르는 대권주자들의 소식....


   태주 : 너, 대통령이 되려면 몇프로 얻으면 되는지 알아?

          50.1프로만 얻으면 끝나. 나머진 깨끗이 찌그러지는거야.

          깨끗이... 그게 세상이치지...

          (현지의 얼굴을 정감있게 매만지며-)

          아직 감이 안잡히니? 임마, 누군가를 51프로 믿는다는건,

          100프로 믿는다는 뜯이야... 49프로 믿는다는 건, 절대 안 믿

          는다는 뜻이야.. 난.. 세상에서 너만을 믿어.. 앞으로도 그럴

          꺼고.


 그제야, 태주의 51프로의 의미를 깨닫고, 바라보는 현지....

 순간적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그녀는 시인의감수성을 타고 난 것이다.....

 춘자... 태주의 가슴에 포근히 안겨온다.


   현지 : 후회안해?... 넘버1이 될 수도 있었는데....

   태주 : 세상에 넘버1은 없어 임마... 다 3류지.

          너두, 나두, 마동팔이두, 세상사람도... 모두 다 3류야.


** 이글은 제가 온라인 영화비평 네오이마주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5년12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





Posted by sheis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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