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그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은 사람이 많을수록 더 찾기 쉽다. 어딜가나 눈에 뜨이는 특별한 그들. 전형적인 그들 중의 한 명은 故 이은주씨다. 우수에 젖은 눈빛 자기 연민의 그 신비한 느낌. 그들 중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언뜻 보면 평범한 외모를 가진 문소리씨다. 언젠가 모감독이 인터뷰에서 그녀가 인형처럼 예쁜 배우는 아니라고 했었다. 어째 여배우에게 저런 말을 했을까. 그 감독은 배우 문소리의 진가를 모르는 것 같다. 비록 사석에서 만난적은 없지만 분명히 그녀에게는 남다른 것이 있다. 얼굴만 예쁘장해서 아무 개성도 없는 배우랑은 다르다. 


<박하사탕>, <가족의 탄생>, <효자동 이발사>처럼 참한 여자를 연기해낼 때는 정말로 감쪽같다. 또 평범한 인물이지만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인 <바람난 가족>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특별해서 영화가 달라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영화가 특별해서 그녀가 달라보이는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그들은 자유롭고 독창적인척하면서 속으로는 무엇이 좋고 좋지 않은가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가슴중심 사람들(2,3,4유형) 답게, 이들이 가진 삶의 의문은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당신의 시선을 끌고 있는가?’이다. 미적인 측면에서 매혹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예외적이고 비밀스럽고 비정상적이고 이국적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한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속의 조은숙 교수를 보자.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녀에게 주위의 많은 남자들이 애를 태운다. 교수, 만화가, PD ... 직업도 다양한 그들. 영화는 그녀의 은밀한 매력이 뭔지는 말하지 못한다. 허술한 내러티브를 배우 문소리씨의 매력으로 메꾸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의 좀 이상한 영화였는데... 영화적 설정이지만 그녀가 얼마나 멋진지 절둑거리며 걷는 것조차 섹시(?)했다.



그녀가 좀 촌스런 복장을 하고 나왔던 영화가 몇 개 있지만,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서 그런지 잠바 떼기 하나만 걸쳐도 상당히 근사하다. <오아시스>의 그 회색빛 잠바와 촌스런 분홍색 곱창 머리끈. 흔히 그들은 ‘나는 방금 급하게 옷을 걸친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옷차림은 대단히 주의 깊게 선택된 것이다. <사랑해 말순씨>에서 눈썹을 싹 밀고, 얼굴에 초승달 모양의 눈썹을 그려 넣고 입술을 빨갛게 칠하던 장면을 생각해보자. 전혀 촌스럽지 않다. 4유형의 삶이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4유형은 어린 시절에 현실은 견딜 수 없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대개 그런 경험은 고통스러운 상실의 체험과 결부되어 있다. 그래서 4유형의 갈망은 그 잃어버린 것을 향해 있다. 갈망이 소유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자마자 대개 실망한다. 이런식이다.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상대를 견딜 수 없어하고, 결국 상대가 떠나면 그제서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상대가 돌아오면 즉시 사랑이 죽는다. 적절한 예인지 확실치 않지만 <바람난 가족>의 호정이 그렇다. 시종일관 쿨한척하지만 그녀의 삶은 공허하고 그녀의 욕구불만은 해소되지 못한다. 그녀의 문제가 하나씩 해결(?)되고 아기도 가지지만 남편이 돌아왔을 때 ‘아웃이야’라고 소리친다. 이것이 4유형의 방식이다.


4유형은 진부한 것, 시대에 뒤진 것, 평범한 것, 보통인 것, 개성 없는 것, 그리고 모든 ‘정상적인’ 것을 혐오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은 고급스럽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보통의 정상인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끝부분을 생각해보자. 조은숙 교수는 일어나야할 모든 영화적인 사건이 일어난 뒤에 눈물을 흘린다. ‘야 도대체 저 눈물의 의미는 뭐야?’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우는 것은 누군가 죽어서도, 만화가가 되어 나타난 친구 때문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드러났기 때문도 아니다. 그녀는 이 일련의 사태를 생각하며 그 ‘달콤한 슬픔’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4유형의 함정인 ‘우수’이다. 좀 더 극단적인 해석을 하자면...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확대해석하면 감독은 영화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고 한다. 이 ‘예술적인 승화’는 4유형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종종 취하는 방어기제이다. 진정한 슬픔의 고통과 거절의 공포를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미성숙한 4유형은 ‘나처럼 똑바로 나를 응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나 자신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때때로 절망해야하는 그들은 진정한 ‘비극적 낭만주의자’이다. 


그들의 근원적인 악은 ‘선망’이다. 누가 자기보다 더 멋있고 품위가 있는지, 또 더 안목이 있고 재주가 비상하고 훨씬 독특한지 안다. 4유형이 선망을 느끼지 않는 대상은 없다. 본인이 갖고 있지 않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선망은 바로 질투로 변한다. 상대가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 한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 나는 내가 눈에 안 띄고 버림받지 않도록 강한 인상을 줘야 해’ 때문에 4유형은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느낀다. 


평범한 것을 정상적인 모든 것을 피하는 4유형은 다른 사람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변화를 거부하는 그들은 ‘그렇지만 나는 다르고 싶다. 난 다른 모든 사람들의 방식에 맞추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아시스>에서의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는 여배우로서는 치명적인 배역은... 그런 특별하고 싶다는 그녀의 절실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미성숙한 4유형이 가지는 우울은 모든 사람이 체험하는 정상적인 슬픔과는 다르다. 그들의 독특한 감정과 큰 고통과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에는... 아무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핑계 뒤에 슬픔에 대한 거부가 있다. 4유형은 자신의 감정을 대단히 진지하게 여겨서 마음 깊이 ‘상처’를 받는다. 이런 감정적인 소모 -조증과 울증을 넘나드는- 시련을 통해서 아무도 도달할 수 없는 감정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다. 성숙한 4유형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 이것은 본인이 이 모든 것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4유형의 삶의 과제는 건강한 현실성을 발전시키고, 그들의 갈망을 현실성있는 목표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양 극단으로 치닫지 않으면서 자기 에너지를 발견해야 한다. 살면서 겪는 상실의 체험을 직시하고 그 분노를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의 표를 보면 4유형의 위안점은 1유형이다. 1유형의 가치와 명확성과 양심이 혼돈상태의 자기를 의심하는 주관을 돕는 균형이다. 1유형의 가치는 감정보다 중요하며, 근면이 천재성보다 중요하고, 이성이 상징보다 중요하다. 1유형의 건전함이 4유형이 자신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환상의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1유형이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짓밟히지 않고 객관적인 바판을 허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1유형의 타고난 개방성의 도움을 받으면 자신의 자연스러움과 독창성을 접할 수 있다.  (반대로 2유형은 매우 좋지 못하다. 남들의 사랑과 주목을 통해서 자기 본질을 얻기 위해 애쓴다면 상황은 더욱더 악화된다. 미성숙한 2유형의 특징인 친소-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현상-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고, 자기가 의존하는 사람들을 증오하게 될 수 있다)

모든 평범한 것들을 특별하게 해주는 배우 문소리씨 잠시 실례했습니다. 똑같은 영화도 남다르게 보이게하는 당신을 계속 주목하고 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문소리의 필모그래피]


가족의 탄생 (2006) - 미라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2005) - 조은숙

사랑해 말순씨 (2005) - 엄마 김말순

사과 (2005) - 현정

효자동 이발사 (2004) - 김민자

바람난 가족 (2003) - 은호정

오아시스 (2002) - 한공주

봄산에 (2002) - 정우

외계의 제19호 계획 (2001) - 처녀귀신

박하사탕 (1999) - 윤순임



PS: 본문의 에니어그램 이론은 [내 안에 접힌 날개]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이글은 제가 온라인 영화비평 네오이마주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7년7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





Posted by sheis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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