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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출처: [인터뷰] 이상희 배우, 부조리에 당당하게 저항하는 삶을 택한 시지프스 

("련희와 연희" 공식사이트 https://ryunhee.com/2017/11/30/interview-leesanghee/ )



인상적인 연기 잘 봤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연기를 한 것 같다.
다 보고서 눈물이 좀 났다.

 

좋은 시나리오 덕분일 겁니다. 연극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접해봤는데, 연기가 좋아서 작품이 빛나는 경우보다 오히려 좋은 작품이 인물을 살려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캐스팅해주신 최종구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정이 격한 부분뿐만 아니라 일상 씬에서도 눈이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 같았다.
특별히 <련희와 연희> 연기를 하면서 메소드 연기(?) 를 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했나?

 

영화가 처음이라 거울 보면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제 모습이 화면에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하기도 하고 살짝 두렵기도 하더라고요. 련희의 가슴 속에 단단히 굳어버린 아픔의 무게를 온 몸에 품어보려고 애썼습니다.

준비하는 기간 동안 식사량, 말 수, 웃음 등을 많이 줄였습니다. 무겁고 규칙적인 호흡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요. 제일 신경 쓰인 건 걸음걸이였습니다. 평소 너무 자유분방한 팔자걸음이 련희의 캐릭터와 맞질 않아서요. 습관이라 잘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혼자 괄약근 조여가며 고군분투했지요.

 
 

련희는 끈 떨어진 갓(?)처럼 그렇게 남한에 정착하는데,편의점 소녀 연희를 처음에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련희 관점에서 보자면 연희를 받아들인 계기나 이유가 있었을까?

 

좀 지나친 해석일수도 있지만, 저는 련희와 연희에게서 신에 대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련희 딸의 죽음도, 연희가 그런 부모를 만난 것도 모두 신의 영역이니까요. 련희의 차가움은 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대 잊지 않고 절대 적응하지 않음으로써 신에게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련희는 영겁의 형벌을 감내함으로써 끝끝내 신에게 저항하는 시지프스와 같은 삶을 선택한 것이지요.

연희의 방탕한 삶도 같은 의미에서 저항이라고 생각됩니다. 두 여인은 느낌으로 서로를 읽어낸 것 같습니다. 연희가 아이를 낳기로 결정함으로써, 련희가 연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함으로써 두 여인은 거대한 신의 부조리에 당당하게 저항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요.

 
 

극 초반에 련희는 타자로서 배척받는 (?) 부분보다 오히려 자신이 더 사회를 배척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것이 그동안 타자로서 존재했던 여성 혹은 또 탈북자에 대한 은유일까? 이상희씨의 생각은 어떤가?

 

련희를 탈북자, 이방인 또는 여성으로 규정지어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픔이 너무 커서 존재가 아픔 속에 묻힌 한 인간으로 련희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련희가 사회를 배척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다기보다, 아픔이라는 고치 속에 갇혀 고치 밖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던 거라고 느꼈습니다.

련희의 가시 도친 고치는 얼핏 보면 사회와 타인에 대한 적의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련희는 그 가시가 살로 파고드는 고통을 외롭게 감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련희에게 있어서 연희는 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고,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굉장히 애매한 존재다. 여성연대라고 표현하기에도 모호하고, 모성애라고 하기에도 그런데, 련희가 연희에게 느낀 감정은 뭐였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련희는 연희에게서 강한 저항의식을 느낀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영겁의 형벌을 내림으로써 신의 부조리에 저항하던 련희의 눈에 비친 연희의 모습은 또 다른 방식의 저항이었습니다.

가난을 증오로 표현하지 않고, 탈 도덕을 부끄러움으로 표현하지 않는 아이, 좋은 엄마가 됨으로써 거지같은 엄마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겠다는 결투장을 던진 아이. 련희와 연희는 서로에게 정신적인 동력을 제공하는 저항동지 쯤 되는 것 같습니다.

 
 

대안 가족 이야기도 나왔던데, 련희에게 있어서 연희는 새로운 가족인가?

 

그럼요. 가족이지요. 그것도 매우 진보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보통 피가 섞여야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핏줄, 내 가족만 바라보고 삽니다. 내 핏줄을 잃었을 때의 충격과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련희는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타인을 바라보기 시작했기에, 핏줄과 관습을 뛰어 넘어, 진정 진보적인 가족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 가족이 사회적 연대의 시작이 아닐까요. 내 핏줄에게 향하던 시선을 들어 주변을 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한 걸음이 아닐까요.

 
 

이상희씨가 나오는 연극 <세자매> 공연도 잘 봤다. 연극을 보면서 배우들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불꽃같다고 할까? 연극에서의 그런 열정들이 영화에서는 어땠는가? 가령 호흡이라든지.

 

<련희와 연희> 첫 리허설 때 스태프 분들이 많이 당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 호흡이 너무 연극적이어서 다들 많이 우려 하셨다고요. 사실 많이 긴장했었습니다.

영화로는 첫 작업이거든요. 하지만 차츰 적응해나가면서, 영화나 연극이나 호흡을 쓰는 건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간에 맞게 표현의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는 것 외에 연기의 본질은 같은 것 같습니다. 배우로써 가장 즐거운 시간은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생성하고 잇고 증폭시키는 과정입니다. 에너지는 호흡을 통해 만들어지니 호흡이 곧 에너지고 열정이지요.

그런데 영화는 촬영이 용이한 순서대로 찍으니까 매 장면마다 호흡을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연결되는 장면을 며칠 뒤에 찍는 경우도 있어서, 이전 촬영 때의 호흡과 에너지를 그대로 소환하는 게 가장 어려운 숙제더군요.

 
 

향후 계획과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배우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2017년 12월22일부터 31일까지 대학로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스프레이> 라는 작품을 올립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2017 올해의 레퍼토리에 선정된 작품이고 전회 출연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연극이라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운 좋게 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기꺼이 열정을 불사를 준비 되어 있습니다. 관객님들!!! 감독님들!!! 작가님들!!! 공연 보러오세요~~~

 
 

글_audrey park 무비스크램블 에디터 (audrey@moviescram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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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원본 출처: [인터뷰] 최종구 감독, 자본주의 축소판 편의점의 이질적인 존재 탈북여성 ("련희와 연희" 공식사이트 https://ryunhee.com/2017/11/28/interview-director-choi/)



시나리오를 직접 쓴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에 <련희와 연희>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모티브는 ‘공간’ 이었다. 예산이 극도로 적었고 애초부터 60분 이상의 장편을 찍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자면 공간이 한정되어야 했다. 그래서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떠올렸는데 가장 자본주의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때까지는 편의점 섭외가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었다.

 

련희와 연희는 한자로는 같은 글자를 쓰는 같은 이름이지만 남북이 분단 된 현재는 각각 다르게 발음한다. 이런 이름의 동질성과 차이로 남북의 동질성과 분단된 현실을 상징하게했다.

 
 

련희의 반복되는 일상의 장소로 편의점이 등장한다. 십대소녀 연희와 만난곳도 편의점이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는 곳도 편의점이 나온다. 특별히 편의점을 지정한 이유라도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편의점은 극도로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에만 있다. 24시간 돌아가는 편의점, 거기서 12시간 교대로 일하는 노동자, 그래서 같은 물건도 두 배 넘게 비싸게 판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일을 해보면 한 순간도 쉬지 못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노동착취와 저임금의 대명사 같은 공간이다. 또 탈북자들이 많이 일하기도 한다. 24시간 밝게 빛나고 먹거리와 입을거리 마저 팔고 있기에 집나온 청소년의 의도치 않은 쉼터이기도 하다.

 

편의점에서 두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있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군상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한 달 정도 일하고 단골들의 담배 취향을 파악해 단골손님이 들어 오면 그 손님이 피우는 담배를 척 내놓고는 했다. 손님들 중에는 그런 나를 테스트하기 위해 다른 손님까지 데리고 와서 보여주는 걸 봤다.

 
 

련희에게 편의점이란 어떤 공간인가?

 

북한에서 넘어 온 사람에게는 가장 이질적인 공간이자 밤새도록 혼자 일해야 하는 고독한 공간이다. 말하자면 편의점은 대한민국의 작은 축소판이다. 그러나 련희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 공간에 새로운 빛을 끌어들인다. 스스로의 몸에서 나온 빛으로. 싸워야 할 때는 싸우고, 먼저 손을 내밀 때는 먼저 내민다.

 
 

연희는 밝게 웃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막나가는(?) 것 같은 지점이 있는데,
상처받은 소녀라서 그런 것인가?

 

청소년기는 사실 일생동안 자존감이 가장 낮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의지는 강렬하지만 청소년의 그런 의지는 어른들의 말 한 마디, 눈길 한 번에 우르르 무너지는 모래성 같은 거다. 자신의 성이 무너질 때 연희가 느끼는 좌절, 바로 그것이 그녀를 ‘막나가는’ 것 처럼 보이게 했을 것이다.

 

련희가 전형적인 탈북 여성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좋았다. 그동안 너무 억척스럽거나 너무 예쁘다거나. 하는 그런것들. 그런 예상을 빗나가서 좋았다.
음 그러니까 우리와 같은 옷을 입고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는. 감정이 있는 똑같은 사람이구나 이런걸 느꼈는데. 감독이 생각하는 탈북여성은 어떤가? 실제로 탈북여성을 만나보거나 취재를 한 것인가?

 

물론 취재를 했고 기본적으로는 ‘같은 사람이다’ 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내가 그리고 싶은 인물은 남한에 와서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 ‘여기에도 소외 받는 사람들이 있구나. 같이 힘내서 살자.’ 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새로운 탈북자를 그리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구성원의 변동을 겪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유입되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안되어있다고 본다. 특히 매스미디어는 ‘다문화’ 라는 애매한 단어로 다문화정책을 어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탈북자,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마어마한 무언의 폭력을 가하는 주범이다. 특히 조선족동포의 폄하는 영화가 앞장서고 있는데 외국의 기준이면 ‘범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특히 탈북자를 이념전쟁의 최전선으로 내몰아 총알받이로 쓰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정치 세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 어렵게 안착한 그들이 온전히 자신의 삶을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보살피는게 우리 사회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또 반대급부로 그들에게 새로운 발전의 에너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연대? 여성영화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의도된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원령 공주> 안에 ‘여자의 웃음 소리가 큰 나라가 행복한 나라’ 라는 대사가 있다.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과 어린이는 여전히 최초의 그리고 최악의 피해자다.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여성인권은 결국은 인류의 인권이다. 이 문제가 진보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진화를 멈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련희와 연희>가 여성영화, 여성연대라고 평가 받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폐지줍는 할머니, 담배사러오는 손님의 캐릭터도 다분히 의도를 가지고 배치한 것이다.

 
 

늦깍이 데뷔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시나리오 많이 썼을 것 같다. 직접 연출을 하니 어떤가? 시나리오만 쓸 때랑 다른가? 영화 찍으면서 느꼈을 소회를 밝혀달라.

 

데뷔 12년차 작가다.

 

12년간 애니메이션, 드라마대본, 시나리오 쓰면서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많은 작가들이 우울증이 있지만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몸은 아는데 마음이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거다. 우울증의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엔 수많은 각색을 했음에도 그 작품들의 행방을 모른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작품이 엎어지면 당연히 관례적으로 계약된 잔금은 못받는다. 경제적 어려움도 크지만 내가 낳아 시집보낸 작품들이, 내가 키운 작품들의 행방을 모른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다.

 

직접 연출을 하면서 정말 딴 사람처럼 생기가 돌아왔다. ‘난 원래 감독이었나?’ 싶을 정도로 신이났다. 하루 두 세시간만 자고도 펄펄 기운이 솟았다. 다시 영화를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고 내가 욕하고 씹던 감독들의 입장도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는 정말 감독의 예술이다. 그러나 내 정체성은 여전히 ‘작가’ 다. 감독도 하고 작가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주연배우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굉장한 흡인력이 있었다. 올해 한국영화가 발견한 여배우로 추천하고 싶다. 섬세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감독은 어떻게 여배우를 발견했나?

 

배우를 캐스팅 전에 가능한 한 오래 관찰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캐스팅 한 후에는 전적으로 그 배우를 믿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배우에게 의혹을 가지고 있으면 배우가 흔들리고, 배우가 흔들리면 그 이후의 모든 일이 힘들어 진다. 일단 계약하면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배우와의 면접과 오디션에 임한다. 그리고 캐스팅의 결과는 오롯이 감독의 책임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져야했다.

 

‘내가 이 작품에 당신을 캐스팅할 수도 있어.’ 라는 시기와 입장에서 배우를 만나지 않는다. 특히 그 배우가 주연급이라면 더욱 그렇다. 독립영화라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일상 속에서 배우를 관찰하거나, 다른 연출자와 일하는 모습, 작품속의 배우를 관찰하는 것이 나만의 방법이다.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연기력, 협업정신을 본다. 그래서 많은 배우들이 머리 속이나 컴퓨터 폴더 속에 정리 되어있다. 이야기과 캐릭터에 따라 언제든지 꺼낼 수 있다.

이제와 련희와 연희의 캐스팅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말 막판에 막판까지 감독을 흔들려는 시도(?)들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흔들리기도 했고 지치기도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두 주연 배우는 나의 의지대로 됐고 100% 만족한다. 처음에 캐스팅을 반대했던 사람들로부터 ‘네가 옳았다’고 인정받았고, 그런 과정에서 얻어낸 최고의 성과는 바로 ‘연출자’로의 자신감이었다.

 

대학로 1인극을 관람하고 매료 된 이상희 배우는 20년 넘게 연극으로 단련된 노련한 배우다. 놀랍게도 련희와 연희가 그의 첫 스크린 작품인데도 때로는 감독인 나를 이끌었다. 개인적으로 ‘련희’ 역은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희 배우는 마침 그 조건까지 충족하고 있었다. 나중에 동료들에게도 그를 캐스팅 한 것은 ‘신의 한수’ 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에게는 배우를 넘어서 ‘은인’이다.

 

가출소녀이자 자존심쎈 ‘연희’역의 윤은지 배우는 DMC첨단산업센터내의 ‘프로필 상자’ 에서 발견해서 개인 면접과 오디션이라는 3단계 검증을 통과한 케이스다. (웃음) 두 상자쯤 되는 사진 속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와서 기억 속에 있었는데 사진마다 이미지가 많이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 순수하기도 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다 가지고 있어야 했다.

 

실제로 만나보니 사진보다 더 예쁘긴 했지만 낯을 많이 가리고 경계심이 가득 차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자신은 아니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언제든지 자리를 박차고 도망칠 태세였다.

 

그런데 보자마자 나는 이 친구가 마음에 들었다.  ‘이 친구 머리를 염색시켜야겠다.’ 는 구체적인 생각까지 들더라. 그래서 오디션을 제안했다. 오디션에서도 잘했고 신체적 조건도 배역이랑 잘 맞았다. 북한 출신 ‘련희’와 나란히 섰을 때 련희의 키가 작아 보여야해서 ‘연희’ 역은 키가 커야 했다. 윤은지 배우에 일말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지인들도 영화를 보고나서는 다들 엄지를 세워서 우쭐해 질 수 있었다.

 
 
 

끝으로 관객에게 한 마디

 

그냥 영화다. 배우가 있고 스텝이 있고 감독이 있지만 좀 작은…아니 많이 작은 영화다. 그렇다고 애정을 구걸하진 않겠다.  상업영화에 찌든 감성을 정화하고 싶다면 한번 발품팔아 보시고 정당하게 평가해주십사하고 부탁드리고싶다.

 

 

글_audrey park 무비스크램블 에디터 (audrey@moviescram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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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서 탈출한 여자, 집에서 탈출한 여자
남과 북 두 여자의 운명적인 만남

탈북하는 도중 아이를 잃은 김련희는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겨우 살아간다. 그런 련희가 일하는 편의점에 나타난 열일곱 김연희는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훔친다. 련희는 가출소녀 연희가 아빠가 누구인지 “낳아 봐야 아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막혀 한다. 련희는 자신의 삶 속으로 날아든 작은 새 같은 연희를 통해 오랫동안 지고 있던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새 삶을 시작할 희망을 발견하는데…

수상정보:
KOFIC 2017 저예산영화 개봉지원작· 2017 광명큰빛영화제 초청
2016 평화와 통일 영화 제작지원 시나리오 공모전 중편 부문 대상



** <련희와 연희 > 공식 사이트는 www.ryunhee.com 입니다. **

** <련희와 연희>  페이스북 팬 페이지 www.facebook.com/ryunhee.official **

** <련희와 연희>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ryunhee.official **


Posted by sheis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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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압록강을 통해서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48미터는 북한 양강도에서 중국 장백현 사이에 흐르는 압록강의 최단 거리를 뜻한다.

도강꾼인 여주인공은 어린시절 헤어졌던 여동생을 찾기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압록강을 넘나들며 탈북자들을 돕는다.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그녀도 사실 북한경비대에게 돈을 건네야 하는 사정이 있다.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여주인공은 정작 여동생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거액의 돈을 요구한다. 북한을 탈출해야만 하는 사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고 여주인공은 이들을 책임지고 압록강을 건네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을 방해하는 뜻하지 않는 사건들이 터지게 되고 사람들은 위험에 처한다.

영화는 북한의 현실과 인권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아낀다. 빛 소리 스토리 감정 모든 것이 절제된 영화에서 관객이 진실과 마주하는 것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감독은 자신의 개성과 색채보다 탈북자의 현실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영화는 무척 수수하면서도 묵직하다.

영화는 탈북자들의 인권을 말하기 위해서 북한정권을 비판하거나 그들을 부정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주민이 우리와 다를바 없는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한다. 그들도 우리처럼 식구들과 밥을 먹고 연애를 하고 어린 자식이 있으며 아픈 부모가 있다. 정권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모두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서 고향을 등지게 된다. 이들에게도 고향은 소중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그리 소중히 대하는 것 같지가 않다.

보다시피 이 영화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많은 슬픔을 자아내는 방식을 취하지도 않는다. 클라이막스의 비극도 어느 정도 예상하던바라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순간 영화가 단지 허구가 아니란 걸 깨달아서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 대부분이 다시 북송되는 현실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이글은 제가 무비스크램블에 2013년 7월에 올린 글입니다. 원문보기 **



조국에서 탈출한 여자, 집에서 탈출한 여자
<련희와 연희>12월 14일 대개봉

Posted by sheis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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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엄마가 언급될 때는 주체적인 한 개인으로서 보다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타자였다. 예를 들면 나에게는 헌신적인 엄마가 있었고 그에게는 이기적이고 사치스러운 엄마가 있었다 혹은 옆집 엄마는 어떠어떠하더라 등이다.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마라고 불려지며 한계 지어지는 그들에게는 익숙한 이미지가 있다. 오늘 읽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그 엄마의 익숙한 모습과 낯선 모습이 모두 드러난다. 그뿐이 아니다 [마더]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나리오를 펼친다.


 1. 그냥 마더

 영화를 보면 왜 봉준호 감독이 주인공으로 김혜자를 고집했는지 알 수 있다. 김혜자에게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마더의 이미지가 들어있다. 울엄마 혹은 옆집엄마가 가지고 있을 법한 자식에 대한 사랑,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는 소녀스러움, 세월의 흔적, 신경질, 짜증, 웃음, 울음, 분노, 뻔뻔함, 극성스러움... 때로는 고마우면서도 때로는 부끄러운 그런 우리의 진짜 엄마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몇 십년 동안 연기해온 전원일기 속의 어머니 그 자체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그녀는 익숙한 마더의 이미지를 먹고 들어간다. 뭐 그다음부터야 영화에서 스토리전개상 낯선 마더의 이미지가 나오기는 한다.

 

# 1 어딘가

 

넓게 펼쳐진 들판, 바람에 출렁이는 풀들 너머로 멀리 숲이 보인다.

숲에서부터 걸어나온 듯한 혜자, 어느새 카메라 앞까지 다가온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 ... 뭔가 넋이 나간 듯한 얼굴 ...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커다란 눈동자 ...

혜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문득, 고요한 바람소리 너머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는 혜자.

넋나간 표정으로 조금씩 조금씩 ... 몸을 흔든다.

 

넓은 들판, 홀로 외롭게 아줌마 춤을 추는 혜자의 모습 위로,

메인 타이틀 < 마더 > 떠오른다.

 

몇분사이에 관객들은 어... 어라 저 엄마가 왜 저런대니? 미쳤나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대니? 하는 감정을 가지며 극에 서서히 빠져든다. 물론 마더는 평범하지 않다. 적어도 영화의 주인공이 될 만큼 사연이 있으며 나름 특별한 데도 있다.

 

# 8 경찰서

 

(...중략...)

빽미러는 철순이 깼다는 걸 진정으로기억 못하는 듯, - 한 물고기 눈빛이 되는 경배, 문득 두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이상하게 누르기 시작하고 ...

 

철순 : 가뜩이나 벤츤데 어쩔래 ... 좀 비싸 그게 ?

경배 : ... 많이 비싼가 ...?

제문 : 최하 ... 이백은 할 걸 ...

 

그죠 ? 라는 눈빛으로 중년의 교수를 바라보는 제문, 고개 끄덕이는 교수.

 

경배 : - ! 내가 왜 그랬지 ? -

 

한심한 듯 바라보는 형사들 너머로 ... 사무실 문 열리며 들어오는 혜자가 보인다.

허리를 구십도로 숙여가며, 익숙하게 경찰서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혜자,

마치 보험 아줌마처럼 ... 쌍감탕을 또각또각 한 병씩 책상마다 놓으면서 돌진해온다.

경배, 그런 엄마가 챙피하기라도 한 듯, 다시 고래를 숙이며 골프공에 낙서를 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구차해질 수 있는 또 그런 준비가 되어있는 마더의 모습 위에 모자란 자식이 안타까워서 좀 유별나진 그런 모습이 덧씌워진다.

 

# 10 버스 정거장 / 저녁

 

(...중략...)

경배가 담벼락에 대고 오줌을 누고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혜자) : 경배야 ... !

 

화면 오른쪽에서, 흰 대접을 들고 프레임 - 인 하는 혜자.

오줌누는 경배를 누가 볼까 두려운지, 계속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혜자 : 너 약! 오늘치 약 먹어야지 ...

 

계속 오줌이 나오는지, 경배의 두 손은 앞 지퍼 족에 붙들려있고,

조급한 혜자는 손에 쥔 흰 약사발을 경배의 입에 들이 민다.

벽을 향해 오줌을 누면서, 동시에 시커먼 한약을 꿀꺽꿀꺽 삼키는 경배 ...

약사발을 기울이며 지긋이 경배를 바라보는 혜자 ... 기묘한 풍경이다.

 

(...중략...)

 

 

2. 그런 마더에게 세상은

 

그런 마더가 느끼는 세상은 한마디로 낯설고 험하고 마더에게 무관심하다. 착착 입에 떨어지는 시나리오와 달리 지루하고 외국영화처럼 낯선 영화의 생경한 느낌 그자체다.

 

 

# 17 폐가 / 이른 아침

 

디졸브 계속되면 ... 이른 아침 하늘을 배경으로, 폐가의 돌출된 옥상 위.

검은 긴 머리를 밖으로 늘어뜨리고, 난간아래로 축 - 늘어져있는 여고생의 시체.

그런 시체를 우두커니 올려다 보고 있는 형사들 ... 제문, 홍조, 그리고 반장의 모습

 

홍조 : 이름이 정. . 숙 이구요. 서린종고 2학년 4...

반장 : 집에는 연락됐어 ? 보호자는?

홍조 : 할머니만 한 분 있는데 치매라서 ... 보호를 받는입장이라네요.

제문 : 그나저나 이게 얼마만이야 우리? 살인사건이 ...

홍조 : (웃으며) 저 오구나선 처음 같은데.

반장 : 허허 ... 그렇게나 없었나?

 

뭔가 화기애애 하면서도 조금씩은 어색한 ... 기묘한 현장 분위기

마치 금강산 봉우리 쳐다보는 관광개들처럼, 시체를 계속 올려다보는 형사들.

 

장면 바뀌면 ... 폐가 옥상 위에 올라가 시체 바로 옆에 서있는 제문과 홍조

사건현장을 둘러싼 폴리스 라인과 주변 통제중인 인원들의 모습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제문 : 왠일로 이렇게 보존이 잘됐어, 현장이 ... ?

홍조 : 어유 뭐 ... 요즘 순경애들두 그렇구, 테레비서 CSI 같은거도 다들보고,

감식반두 애들이 샤프하고 ...

제문 : 근데 아핌에 소나기 잔뜩 왔지 ? 웬만한건 다 뭉개졌을꺼아냐 ...

홍조 : 그렇죠 ... (시체보며) 그래도 암튼 둔기죠 둔기. 두개골 골절에다 과다출혈.

 

제문의 시점으로 ... 옥상 아래로 섬칫하게 늘어져 있는 아숙의 긴 머리.

응고된 피가 뒤엉켜 떡져있고, 수직 아래 땅바닥에는 피가 스며든 검붉은 원이 보인다.

아숙의 머리 수직 아래 쪽으로 걸어오는 감식반원.

조그만 삽 같은 것으로, 피에 물든 흙을 조심스레 퍼담기 시작한다.

 

이건 또 뭔가. 다큐도 아니고 현장25시도 아니고 말이지. 카메라는 마더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다닌다. 도무지 영화 같지가 않다. 산만하고 뭔가 다들 이건 영화가 아니야라고 말하고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 전체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영화속에서 진지한 사람은 마더 한 명 밖에 없다. 아들이 누군가를 죽였다는데 관심 갖는 사람하나 없고 사건 담당 형사조차도 사건에 집중하지 않으며 심지어 돈주고 고용한 변호사조차 사건은 관심 밖이다.

 

바보 아들조차도 자신이 사람을 안죽였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고 마더와 소통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듯하다. 마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줄 수도 없다. 이 상황. 한마디로 좆같다. (#40 혜자의 집. 몰라 암튼 이 동네 자체가 ... 좆같애 ...경찰도 좆같고 ... 사람들도 좆같고 ... 이 전 - 반적인 분위기가 ... ? ) 그래서 마더가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이 관객들도 잠시 마더와 함께 다니며 속도 터지고 돈만 밝히는 변호사 때문에 애가 타고 사건을 아무렇게나 덮어버리는 형사에게 화가 나고,

 

# 52 구치소 면회실

(...중략...)

흐느끼는 혜자를 왠지 무심하게 바라보는 경배 ... 면회실에 흐르는 불편한 침묵

혜자, 갑자기 울음을 뚝 - 멈추며 미친듯이 가방 속을 뒤지기 시작한다.

 

혜자 : ( 꽃무늬 침통을 꺼내며 ) 안되겠다. 너 이리 가까이 와봐

경배 : ?

혜자 : 나쁜일, 끔찍한 일, 속병나기 좋게 가슴에 꾹 맺힌 거 ...

깨끗하게 싸- 악 풀어주는 침자리가 있어. 바지 좀 내려봐

경배 : .........

혜자 : 황제내경 책에도 나오는 거다. 오금쟁이 위로 다섯 치, 거기서 세치 반.

여기 이 구멍에다 허벅지 대봐 ... , 침 맞고 싹 다 잊어버려야돼

 

완전히 넋이 나간, 미친 사람 눈빛의 혜자 ... 정신없이 중얼대며 침통에서 침을 꺼내든다.

당황스레 바라보던 교도관, 혜자의 팔을 붙잡으며

 

교도 : 어머니 잠깐만 ...

혜자 : 종도 삼촌, 한번만 좀 봐 줘. 우리 애 속병 난 거 봤잖아... 딱 한 대만. ?

경배 : ( 나지막히 ) ... ... 침놔서 죽이게 ?

혜자 : ... !!

 

가슴이 철렁 내려앉듯, 다리에 힘이 풀리는 혜자, 침을 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데...

 

경배 : ... 앞으로 오지마 엄마 ... 와도 안 만날거야.

 

문을 꽝 - 닫으며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경배. 면회실을 감싸는 잔인한 정적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혜자의 눈망울이 가늘게 떨린다.

 

아들에게 실망하고 끝내는 험한 일을 겪는다.

 

 

3. 다시 그 마더

 

다시 첫장면으로 돌아가서 마더는 그 이상한 춤을 추며 넋이 나간다. 이제는 관객도 마더가 왜 그렇게 미쳐보이는지 알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낯선 모습을 가진 마더가 겪은 일을 그 감정을 답답하고 지루한 영화 전체를 통해서 말이다. 영화는 마더가 가지는 모성을 이야기하거나 어떤 모성에 대한 해답을 말하지는 않는다. 어떤 감정적인 정리도 하지 않은 채 끝나버리는 이 답답함. 마더가 느꼈을 그 답답함. 나도 허벅지에 침 한데 맞아야겠다. 나쁜일 끔찍한 일 속병나기 좋게 가슴에 꾹 맺힌 거 깨끗하게 싸악 풀어주는 침자리에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백미로 꼽을 수 있는 장면 하나 올리며 책을 덮겠다.

 

# 83 유치장 면회실

 

고개를 들어 눈 앞의 종팔이를 바라보는 혜자, 뒤에는 불안한 기색의 제문이 서있다

이제야 처음 얼굴을 드러내는 종팔이’ ... 더도 덜도 아닌, 전형적인 지진아의 얼굴이다.

생각와 감정을 좀처럼 알 수 없는, 그저 멍 - 한 눈빛의 종팔이.

그 앞에 마주 선 채로 뭔가 말을 꺼내지 못하는 혜자 ... 면회실에 한 동안 침묵이 흐른다.

종팔 : ......

혜자 : ... ... 부모님은 계시니 ?

종팔 : ... ( 도리도리 )

혜자 : 엄마 없어 ?

종팔 : ( 끄덕 끄덕 ) ... 아숙이 사랑해 !!

혜자 : ......

종팔 : 아숙이 너무너무 사랑해 !!

 

멍한 눈빛으로 계속 아숙이 사랑해 를 외치는 종팔이 ...

순간 갑자기 펑 - 울음을 터뜨리는 혜자, 무너지듯 통곡한다.

당황해서 쳐다보는 제문의 시선에는 아랑곳 없이

종팔이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혜자, 걷잡을 수 없이 어깨가 들썩인다.

 ** 이글은 제가 네이버카페 월간시나리오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9년10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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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의 ‘첫사랑’은 이명세 감독과 양선희씨가 시나리오를 썼다.

스토리로 본다면 대중적이고 컨벤션에 충실한 이명세 감독의 영화들. 하지만 화면은 항상 남다르다. 그래서 그 화면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어느 순간에는 반하게 된다.

‘첫사랑’은 사전정보 없이 보게 되면 언제 만든 것이고 어느 시대가 배경인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헤어스타일과 의상은 70년대, 김혜수의 오바된 목소리는 더 이전을 떠올리게 하고, 연극적인 세트들은 해방 전후 같아보여서 도무지 시대를 짐작할 수가 없다.

시나리오에는 70년대라고 표기가 되어있으나, 이 시대 불명의 영화에서 묘하게도 어떤 판타지를 느끼게 한다. 군데군데 나타나는 파스퇴르우유의 광고 같은 그 궁서체의 자막들이며 뜬금없는 별빛이며 신파조의 대사들까지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감수성을 해치지는 못한다.

씬 1 한적한 시골역 (낮)

(따사롭게 내리는 오전의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는 철로를 배경으로 평화롭게 서있는 역사가 한 장의 흑백 사진으로 인화되듯 떠오른다.
낙엽이 옅은 갈색으로 제 색깔을 띠기 시작하면,정지 되었던 흑백화면은 햇살에 물든 듯 노랗게 바뀐다.
화면 한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낙엽을 날린다.
카메라 서서히 성에가 녹아내리는 대합실 창문으로 다가간다.대합실 안 연탄나로 주위에는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사,오십대의 남녀가 한가롭게 난로불을 쬐고 있다. 대합실 한 쪽 낡은 긴 의자에는 영신과 벙어리 장갑을 끼고 교복 위에 덧입은 감색 코트차림의 갈래머리 여고생,국민 학교 2,3학년 쯤으로 보이는 그녀의 남동생이 앉아있다.
남동생은 곶감이나 밤을 싼듯한 보퉁이를 끌어안고 바닥에 닿지 않은 발을 앞위로 흔들면서 풍선껌으로 풍선을 만들고 있다.풍선을 크게 만들 려다 튀어나가 바닥에 떨어진 껌을 줒어 입에 넣고 천연덕스럽게 다시 풍선을 만든다.)

...(중략)...

온통 파란색으로 색칠된 시골역에서 예쁜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성장이 느려 보이는 갓 대학생이 된 영신은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60년대 여배우처럼 대사를 읊조리지만 생기발랄하게 움직여 영화의 균형을 깨뜨리기도 하고 맞춰주기도 하며 극 흐름을 이끈다. 

좀 더 현실감있는 영신이 좋아하는 연극을 지도하러 모셔온 선생인 창욱은 담배를 멋지게 피는 그냥 보통의 남자다. 영신이 창욱을 마땅치 않게 여기면서도 처음 봤을 때 그의 느낌은 아래 씬7에서 잘 나타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담배를 태우고 현실의 것이 아닌 것같은 화면은 바로 다름아닌 영신의 심리를 나타낸다.


씬 7 선술집 안 (낮)

(겨울햇살이 조각조각 떨어져 있는 선술집 안.
가운데 불을 피울 수 있는 양철로 된 화덕 주위에 둘러 앉아 낮술을 마시 고 있는 영신, 창욱, 미숙.
한구석에는 날품팔이꾼인 듯한 사내가 국밥을 먹는 모습도 보인다.
-화덕 주변에는 구겨서 버린 담배갑고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널려있다.
-화덕 가운데는 먹다 남은 꽁치가 타는 냄새를 피워 올리고 있다.
-화덕 위에 놓인 양은 재떨이에도 담배 꽁초가 가득하다.
-입 주위와 옷에 줄줄 흘리면서 벌컥벌컥 막걸리를 들이키는 창욱.
 거칠게 술사발을 내려놓고 옷소매로 입 주위를 쓱 닦는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를 들어 창욱에게 술을 따르려던 미숙,
 빈 주전자를 들어 흔들면서 주인에게 술을 주문한다.
-젓가락으로 꽁치를 뒤집고 있는 영신, 재미없고 지루한 듯 하다.
-술잔을 들어 건배를 하는 창욱과 미숙.
  취중에도 뭔가를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창욱.
-창욱의 얘기에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미숙.
-미숙에게 담배를 권하는 창욱.
-목도리를 풀어서 미숙의 목게 감아주는 창욱.
-두손으로 머리칼을 헤집으려 머리를 긁어대는 창욱.
*그립고 향수가 느껴지고, 낭만이 가득한 시절의 모습일 것.
(이런 풍경들 위로 영신의 소리가 들려온다)

영 신 (마음의 소리) 영신아! 너 오늘 실망했지. 네가 상상한 사람은 낮술에 취해서 술냄새를 풀풀 풍기고, 상스러운 말을 함부로 하고, 줄담배만 피는 그런 사람은 아니 었으니까. 그지?네가 술 담배 못한다고 무시하지도 않고, 꿈이 뭔지 자상하게 물어보면서 관심도 가져주고.. 뭐 그런 사람이길 속으로는 은근히 바래기도 했었잖니?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뭐든지 다 노래가 되고, 시가되고, 보통사람에게는 없는 분위기. 뭐랄까? 아주 신성하고도 신비로운, 뭐 그런 분위기를 가졌길 바랬고... 그렇지만 너도 알잖니? 기대는 항상 실망을 동반한다는거. 사실, 예술가를 너무 신비한 존재로만 생각한 너도 좀 어리석었고, 그렇지 않니?

(영신과 창욱, 미숙 세 사람만 있던 선술집에는 어느새 형광등이 꺼지고, 투명인간으로 아까부터 그 자리에 있다가 이제 막 마술에서 풀린 것 처럼, 사람들로 가득해 지는 선술집)

우리가 70년대의 지나간 한국영화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닭살스런 대사도 웃으며 넘길만한 여유를 가지고 있다면 과잉된 감상주의도 낭만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첫사랑’을 보며 즐길 수 있으리라.


씬 11 영신의 집 안 (아침)

(쌀통 위에 놓인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오전 10시 무렵의 주부 프로그램 진행자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는 부엌겸 좁은 거실. 들창을 통해 들어온 겨울 햇살이 가득 흘러 넘치고 있다.중앙에 있는 연탄 난로 위 양은 대야에서는 빨래가 삶기는지 김을 모락 모락 피워 올리고 있고,
영선,이제 일어났는지 상의와 바지가 따로 떨어진 누비잠옷 차림으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이때 밖으로 연결된 부엌문에서 들려오는 영신의 엄마, 깔끔해 보이는 40대.
밖에서 다듬은 겨울 푸성귀와 도마를 담은 소쿠리를 들고 있다. 김치뿐인 식탁을 보고 부엌으로 가서 반찬 두어가지를 꺼내온다.)

엄 마 (반찬을 식탁에 놓으며 느닷없이) 너도 담배 피냐? 연극 한답시고 담배나 피고,남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술이나 마시고, 깡패들처럼 그럴거면 연극같은 거 하지도 마라. 니네 아버지 봐라. 너희 둘 공부 시키려고 얼마나 고생하시니? 담배값 아끼려고 담배까지 다 끊으시고...
(난로가로 가서 연탄불을 확인하고, 불문을 조절한 다음, 난로 뚜껑을 닫 고, 다시 대야를 올려 놓고, 막대기로 짤래를 뒤집고 부엌 뒷문으로 휙 나 가는 엄마)

영 신 (마음의 소리) (관객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듯 카메라를 보며) 엄마는 늘 저런식입니다. 마치 미국 영화의 형가들처럼 늘 일방적으로 몰아 부치죠. 사실 남학생들 속에 있다 보면, 옷에 담배냄새 배는건 당연 하잖아요.술이야 딱 한잔 마셔본 적이 있지만 맹세코 담배만은 피운적이 없다구요! (생각해 보니까 분하다는 듯이 발딱 일어서며 큰 소리로) 엄마!!
  
(땡땡... 시계소리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뒤이어 경쾌한 피아노 음악이 흐른다)

영신은 창욱의 집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창욱을 만나게 된다. 좋아하던 마음이 다시 확인되며 영신은 날아갈 것처럼 마음이 붕떠서 급기야는 투명인간처럼 된다.


씬 27 신작로 (밤)

(논위로 쏟아지는 달빛 때문에 대낮처럼 하얀 밤길. 양 옆으로 늘어선 가 로수들의 그림자 위에만 소복히 어둠이 내려 있는 듯한 길을 자전거를 타 고 신나게 달리는 영신. 손전등을 들고 심부름을 갔다 오던 오누이가 마치 도깨비를 본 듯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들 시야로는 자전거가 사람을 태우지 않고 저혼자 달려 길 끝으로 사라 진다.)

깜찍한 영신의 상상은 좋아하는 창욱의 방까지 엿본다.


씬 28-1 창욱의 방안 (밤)

(창욱, 뒤돌아보면 ,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살며시 닫히는 문.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하는 창욱.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포트에서 빈 커피잔으로 물이 따루어진다.
티스푼을 들고 커피잔에 든 커피와 설탕, 프림, 그리고 자신의 사랑이 잘 녹아 섞이도록 정성껏, 그러나 소리는 나지 않게 젓는다.
커피잔이 공중을 날아가서 책상위에 놓여진다.
창욱은 커피잔이 원래 그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처럼 무심코 잔을 들어 커 피를 마신다. 맛과 향기를 음미하며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는 창욱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영신.
창욱이 일하는 모습을 여러 장소에서 여러 각도로 바라보는 영신.
- 멀리 벽에 기대어서
- 책상에 걸터앉아서
- 창욱의 등 뒤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 창욱위 얼굴 앞 책상에 턱을 괴고
일에 열중해 있는 창욱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창욱의 몸쪽으로 손이 간다. 마치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이끌리듯 -
거대한 자력을 가진 자석에 저절로 이끌리듯이 창욱도 영신의 손을 잡는 다. 그때 창욱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영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 짧게 F.O )

첫사랑을 늦게 시작한 영신은 사춘기 소녀처럼 된다.

씬 33 밤 하늘

(까만 밤,
하늘에는 다이아몬드를 쏟아놓은 듯이 별이 반짝이고 있다.
저 멀리 별똥별 한가 어두운 허공을 가로지르며 떨어진다. 별
똥별이 떨어지는 속도와 같이 화면이 어두워진다
어두운 화면에 바구니에서 글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듯이 녹색으로 쏟아져 내리는 자막.
"아름다움이 슬프다는 얘기가 있어 마음에 한줄기 시내가 흘러 달이 밝아서 온 길도 나중엔 흐리었다."
- 김광섭의 <달밤>에서 -
( 자막 F.O )

대부분의 첫사랑이 짝사랑인 것처럼 영신은 창욱을 홀로 좋아한다. 언제나 거리감 있는 영신의 짝사랑 상대인 창욱은 그런 그녀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지켜봐준다.


씬 51 밤거리

(어느새 눈은 그치고, 간혹 부는 바람에 날리는 눈.
세상이 온통 흰 옷을 입은 듯 하다.
문을 닫는 상점이 하나 둘 보인다.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걸으며 집으로 가는 사람들 모습도 보인다.
창욱,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차도 쪽으로 서서 걷고 있다.
창욱 뒤에 약간 지쳐서 뒤뚱거리며 걷는 영신.
카바이트 불을 밝히고 장작불을 피워서 고구마를 굽고 있는 고구마장수의 수레를 지나는 영신과 창욱)

창 욱 중학교 다닐 때 였어.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때였지. 숟가락이 든 빈 도시락을 달랑거리면서. 어두운 긴 골목길을 걸었을 때 였는데, 꼭 누군가가 내 뒤를 따라 오는것만 같았지. 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어. 어둠 뿐이었지. 그러면 막 두려워지곤 했어. 그래서 눈을 힘주어 꽉 감았다가 뜨고 앞을 보면, 거기도 어둠 뿐이었지. 어둠 ...... 살면서 늘 그랬어. 앞을 봐도 어둠이고, 뒤를 봐도 어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잘 몰랐지.


씬 52 육교 위 (밤)

(육교 위를 걷는 영신과 창욱)

창 욱 ... 그때 한 여자를 만났지. 어둠 속에서 좌초한 나를 인도해 줄 등대불 같았던 여자, 그래서 결혼을 했지.
영 신 .......

첫사랑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왜 생긴걸까. 너무 어려서 라고들 하지만 영신은 그렇게 늦게 시작한 첫사랑인데도 창욱을 떠나보낸다.


씬 85 연극 '우리 읍내'

(경쾌한 음악이 시작된다.
빈 화면 좌우에서 분장을 한 연극반원 전체가 우루루 몰려 들어와 사진 찍는 포즈로 정렬을 마치면, 찰칵 소리와 함께 화면이 정지된다.
화면이 풀리면, 연극의 한 장면, 한 장의 스틸 사진으로 찍혀진다.
이때 사람들이 화면에 등장하고 퇴장하는 모습이 경쾌한 뮤지컬과 슬랩 스틱한 분위기로 묘사된다.
그위로 깔리는 영신의 나레이션)

영 신 (마음의 소리) 왠일일까? 나를 속인 사람이 없는데도 왠일일까? 나는 왜 이렇게 슬픈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자. 영신아 무엄이 어고 무엇이 갔는가를. 무엇이 눈앞에서 신시루 처럼 피었다 스러졌는가를...
(연극반원 모두가 무대에 나와 손에 손을 잡고 끝 인사를 한다.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장내가 떠나갈듯한 박수소리가 들린다.)

첫사랑이 영신의 마음을 흔들고 그냥 스쳐간 것처럼, 파란색 세트의 따뜻한 노란색 조명아래서 펼쳐진 영화가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남는다.

씬 90 한적한 시골역 (새벽)

(역사쪽을 향해 눈위에 찍혀 있는 한 사람의 발자국. 빠앙- 기적소리.  
침묵 속에서 눈송이가 바람에 날리듯 하다가 눈송이들은 어느새 흩날리는 꽃들로 바뀌고, 봄빛이 가득해진다. 이 풍경들이 한 장의 정지된 흑백 사진으로 바뀐다. ) 

( F.O ) 

(어둠속에서 돋아나는 새순처럼 연두빛으로 떠오르는 자막) 

“금인 시간의 비밀을 알고 난 뒤의
즐거움을 그대는 알고 있을까
처음과 깥은 항상 아무것도 없고
그 사이에 흐르는
노래의 자연
울음의 자연을
헛됨을 버리지 말고
흘러감을 버리지 말고
기억하렴“
- 정현종의 '기억제' 중에서 -


(자막, 사라지고.
귀에 익은 70년대 음악이 흐르고,
그동안 영신이 사랑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사랑 때문에 즐거워 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성장한 모습들이, 하나씩 떠올라 화면을 메운다.)


** 이글은 제가 온라인 영화비평 네오이마주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6년1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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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공주’라니. 하도 제목이 이상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작품인데, 몇 년 전 제목만 들었던 ‘입질’이 원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거슬러 올라가 ‘입질’ 시나리오를 구하는데 찾기가 어려워 청량리 홍릉자료실을 찾았다. 집에 도착할 무렵 마지막 장을 덮는데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린 필자의 과거 한 시점이 생각났다.

대학 다닐 때 학교 정문에서 한 여학생이 남자애들에게 둘러싸여서 매 맞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목격한 것은 한 10초 정도였다. 기억나는 것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과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 무슨 일인지 주춤하는 사이에 수위아저씨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여대였고 맞는 학생은 분명히 우리학교 여자애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피해자에게 버림받았던 남친의 친구들이 몰려와 때렸다는 것과 그날 그 아이가 꽤 오랫동안 맞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두 피해자가 오로라 공주였다면 필자도 지금쯤 살인을 당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작 ‘입질’은 일상에서의 약한 자의 분노가 표출을 위해서 아동유괴라는 소재가 채택이 되었고, 영화 ‘오로라 공주’에서는 피해자 부모, 특히 어머니 입장에서 억울한 심정이 표출되었다. 


#일상의 분노 ‘입질’

굳이 원본 ‘입질’을 들먹이는 것은, 

첫 번째, 영화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로라 공주’에서 이유없이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서이다. 이들이 죽어간 방법은 범죄의 편리함도 있지만 자신이 저지른 죄랑도 관련이 있었다. 연쇄살인을 당한 이들은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사소한 일들로 죽어가는데 이는 ‘입질’이 딸에 대한 복수의 시선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원본에서는 영화는 주인공 시점으로 자기 아이를 죽게한 사람들을 처단하고 있지만 사실은 일상에서 보통 사람이 약자로서 느껴왔던 겪은 여러 가지 억울함을 말하고 있다. 이 약한 자로서 느꼈던 분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동을 학대하는 어른들에 대한 분노(백화점에서 죽은 첫 번째 여자), 이기적이신 사람에 대한 분노(석고팩으로 죽은 두 번째 여자), 무정한 사람에 대한 분노(칼에 맞은 세 번째 남자), 위선에 대한 분노(교회에서 떨어진 네 번째 목사), 여자를 깔보는 남자에 대한 분노, 무심한 아빠에 대한 분노, 마지막으로 아무 힘도 없이 무능하게 딸을 보냈던 엄마 자신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다.


‘오로라 공주’에서는 거의 테러수준으로 무차별적으로 행해지지만 원본에서는 저새씨 진짜 죽여버렸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에서 주인공을 통해서 살인이 이루어진다. (전체살인이 그런것은 아니다.)


두 번째, 영화가 간과한 부분이 아쉬워서이다. 

원본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처단된 사람입장에서도 어떤 용서를 받는 느낌이 든다. 즉, 우리가 지나가 버린 과거의 특정사건으로부터, 피해자로서 가해자를 벌주고 가해자로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는 기분이 들게 한다.

‘오로라 공주’에서는 이 장점이 축소하여, 순정(엄정화)과 오형사(문성근)가 범인을 처단하면서 동시가 자기 스스로가 딸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선에서 마무리 된다. 

 ‘오로라 공주’에서는 첫 번째 살인이 계획적인 것처럼 나오는데, ‘입질’에서는 아래 씬3처럼 우발적으로 저질러진다. 맞는 아이를 보고 자기의 죽은 딸을 생각했다는 해설이 맞겠지만 주인공의 범죄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것은 자기 죄책감 때문이다. 

그 여자가 아이를 때리듯이 누군가 자기아이를 저렇게 죽일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기 자신의 무능에 대한 죄책감에서 무의식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처음 사건이 곧 두 번째 살인으로 이어진 것은 나는 이렇게 남을 도와주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을까 하는 원망의 마음이다.  보통은 사건 후반에 나오는 주인공의 터닝포인트가 입질에서는 초반의 첫 번째 살인 사건에서 생긴다.


씬3 동/ 화장실

...(중략)...

흐르는 피... 그래도 계속되는 여자의 매질

순정이 다가가 아이를 끌어당긴다.


순정 말로 하지 그러세요.


아이가 끅끅거리면서 순정을 의지하려는 몸짓이 보이자.

상관말라며 아이의 목덜미를 휙 끌어당기는 여자.

아이의 공포에 떠는 비명소리.


...(중략)...


울음을 억지로 삼키려고 아이의 입은 실룩거리는데 눈물은 끊임없이

볼을 타고 흐른다.

순정, 딸꾹거리는 아이를 천천히 밀어 화장실 밖으로 내보내더니 안에서

찰그덕하니 문을 잠근다.

순정, 청소도구실을 열고는 자루빗자루를 집어든다.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끝울음 소리와 대조되는 여자의 웃음소리.

알류미늄으로 된 자루비의 손잡이 끝 부분을 덮고있는 플라스틱 보호캡

을 벗겨내는 순정.

자루대의 날카로운 절단부분이 여자가 있는 칸을 향해 찍어진다.


이후로 순정은 본격적으로 살인에 나선다. 순정의 아이가 살해될 당시 상황을 재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관계자 인물들은 자기 못된 성품을 그대로 드러낸다. 아래 83씬을 보면 알겠지만 영화에서 갈비집에서 만난 청년은 배꼽아래가 아니라 혀에 가위를 댔어야 했다.


씬83 국도 / 밤/ 현재

다시 달리고 있는 순정의 차


개자식 좆까네... 욕 좀 했다고 이러는 거야?

순정 쫌?...쫌? 쫌이라고 했냐?


순정, 컵꽂이에 있던 캔을 들어 사납게 개자식을 향해 던져 버린다.


순정 니가 하는 조금의 욕 때문에 내 아이가 마지막 전화를 해왔을 때 어떻게

했는 줄 알아?

개자식 그렇다고 사람을 납치해? 아유 아유! (조수석을 묶인 발로 차대며) 당신

미친 사람 아니야? ... 씨이...

순정 미친년이지!...

개자식 아흐 재수 없어 씨... (차마 욕을 못하고 눈만 부라리는데)

순정 재수?


...(중략)...


개자식 씹쌔끼. 눈깔은 빼서 사탕 빨아 먹을려나...


순정, 차를 세우더니 열쇠를 뽑는다. 아직도 멀어지는 봉고를 흘낏거리는

개자식의 머리를 마구 찍어대는 순정.


순정 잘 보라고 했지. 잘 보라고! 봤어? 봤어? 봤냐구!


개자식의 귀 뒤로 피가 흘러내린다.

꼼꼼하게 옷자락으로 키에 묻은 피를 닦는 순정


순정 재수가 뭔 줄 아냐?... 너 같은 놈에게 욕 얻어먹는 걸 재수 없다고 하는

거고... 니가 내게 붙잡힌 건 횡재수라고 하지.


...(중략)...


가해자(살인당한 사람들)로서 피해자에게 용서받는 느낌은 전체 시나리오를 덮은 후에 느낄 수 있다. 한명씩 죽일 때 느꼈던 주인공의 분노가 아이러니하게도 죽임을 당한 자의 입장에서 이제 용서받았다는 후련한 기분을 갖게 한다. 


#엄마의 분노 '오로라 공주'

이제 영화로 돌아가서 ‘모성애’로 판정받은 ‘오로라 공주’를 다시 살펴보자.

전체적으로 구성이 좀 헐겁고 대사가 너무 감상적으로 흘러버린 점이 있지만 원작에 비해서 진지해지고 피해자 가족의 심리를 잘 다뤘고 세상을 향한 여러 가지 상관없었던 분노가 한 아이와 엄마의 분노로 집약이 되었다.

그리고 원본에서는 정작 유괴당한 아이의 시점이 빠져있어서 사실 아이 유괴라는 핵심이 소재로만 사용이 되었는데, ‘오로라 공주’에서는 이 아이의 쓸쓸한 느낌이 잘 나타났다.

이 영화는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이는가에 집중하여 볼 것이 아니라 왜 죽였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처음부터 무차별하게 사람들을 죽여가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오로라 공주’가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 뚝심있게 밀고 가는 것 같으면서도 산만한데 그 점이 참 아쉽다. 

완성도를 높였다면 틀림없이 ‘친절한 금자씨’보다 훨씬 좋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금자가 복수를 하지만 영화가 끝나도 백선생도 금자도 아무도 관객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 백선생은 끝까지 뉘우치지 못했고, 금자도 사실 뉘우쳤다고 보기 힘들다. 금자가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유괴를 도와주어 결과론적으로 죽게 한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금자가 백선생을 처단하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옥에 있었지만 참회는 커녕 백선생에 대한 복수만 생각했고, 나와서 손가락을 절단하는 장면이 있지만 이것은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줄뿐이고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출감후 나쁜여자처럼 구는 것도 사실상 관객의 동정을 자아내지 진짜 나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도 항상 뭔가 개운하지 않았던 것이 있는데 바로 피해자 설정이 틀렸기 때문이다. 금자씨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여자가 어떻게 복수하는지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의도도 사실 별로였다. 여자의 복수나 아동살해의 피해자 심리는 차라리 ‘오로라 공주’가 낫다.

‘오로라 공주’ 의 아래 씬19을 보면 순정이 느끼는 괴로움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S# 19 순정의 집(INT/N)


디졸브 화면에서 시작하면 역시 모니터 화면. 여섯 살 정도의 아이를 찍은 홈 비디오 

화면이 틀어져 있는 어느 TV 모니터. 아이는 머리에 고깔을 쓰고 재롱 섞인 동작을 섞어 열심히 동요를 부르고 있다.


소리 아빠……. 이제는 알아요. 인생은 외로운 거라고 아빠 가 해준 말, 전에는 몰랐지 만…… 저녁에 뜨는 별이 왜 슬퍼 보이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순정의 집 내부. 불은 꺼져 있지만, 어느 한 곳에서 불빛이 새어나와 아주 어둡진 않다.모니터는 혼자 켜져 있다. 빈 집에 아이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 들려오기 시작하고. 

그 소리를 따라보면 천천히 드러나는 불빛이 흘러나오는 욕실. 반쯤 열려 있는 문. 

물 밖으로 머리만 내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순정의 모습이 멀리 잡힌다. 


순정 …… 저녁에 뜨는 별이 왜 슬퍼 보이는지…….


아이의 노래가 끝나자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허공을 응시하던 순정, 갑자기 물속으로 내려간다. 마치 익사한 듯 물이 넘치는 빈 욕조.

아이의 다른 모습이 보이는 TV 화면. 장난치며 돌아다니고 있다.


가까이 잡은 욕조의 수면. 일렁이는 검은 머릿결.

순간 쑥 솟구치는 순정의 머리. 막혔던 숨을 거칠게 내뿜는, 물에 젖은 그녀의 얼굴. 

눈빛만 차갑게 번득인다. 


위 씬에서 처음 나오기 시작한 아이가 부른 노래는 마지막 까지 끈질기게 반복이 되는데 관객은 짜증이 나면서도 피해자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아이의 엄마는 그 노래소리가 반복되는 것처럼 계속 아이의 죽음을 기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아이는 한 번 죽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엄마의 마음속에서 매일 하루에 수천 번씩 죽는다.


엄마 순정은 그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 분열을 일으킨 사람처럼 아이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죽인 사람 시체에 오로라 스티커를 붙인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에 아이의 목소리랑 스티커가 분위기를 더욱더 그로테스크하게 만들고 있다. 아래 씬 60에서 엄마는 아이를 대신해 자기를 버려둔 택시기사를 처단한다.


S# 60 택시 안(EXT/N)


...(중략)

순정이 돌아보면 뒷좌석 중간에 놓여 있는 껌 바구니.

껌 하나를 집어 들고 문득 고개를 들어보는데,


일루젼. 뒷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여섯 살 민아.

손에는 가방을 꼭 붙들고, 우는 듯 웃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순정, 천천히 껌을 까서 입에 넣으며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뜨고 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뒷자리. 


순정 (부드럽게)아저씨. 요즘도 첫 손님을 여자로 태우면 재수 없어요?

달수 에이, 그런 거……사실 미신이지. 근데, 그 미신이란 것도 근거가 다 있는 거야. 내가 얼마 전에 사고를 당했는데, 그날 첫 손님을 여자를 받았거든. 왠지 기분이 진짜 이상하더라고. 

순정 (웃으며)오늘도 기분이 이상하셨어요?


대답 없이 순정을 돌아보고 히죽 웃는 달수의 얼굴. 


그의 사진이 붙은 개인택시 등록증 인서트. 


뒤를 힐끗 돌아보는 순정. 


흔들리는 뒷자리에 앉아서 초조하게 쳐다보는 민아의 얼굴.

순정 아저씨, 만약에요…… 애가, 한 여섯 살 먹은 어린애가……택시 태워달라고 하면 태워주시나요?

달수 그러엄. 애는 사람 아닌가?


택시는 이제 넓은 사거리의 신호등에 멈춰 섰다. 텅 빈 사거리.


정면으로 보이는 붉은 신호등.


순정 근데 애가 택시비가 모자라면요?

달수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듯 순정을 쳐다본다) 

순정 애가 택시비가 한 이 천원 모자라거든요? 딱 이 천원. 그래도 집까지 데려다 주시 나요?

달수 지금 뭐하자는 거요?

순정 (다시 뒤를 힐끗 돌아보고 뭔가 쫓기듯)아이가요, (아이 목소리로)아저씨……, 저 차비 가 모자라는 데요…… 


일루젼. 순정의 목소리에 겹치듯 뒷자리의 민아가 애원하듯 간절하게 말한다.


민아 아저씨, 저 차비가 모자라는 데요……. 그래도 집에까지 데려다주면 안돼요?


순정 ……그래도 집에까지 데려다주면 안돼요? 예? 아저씨…….

달수 뭐야, 이거? (잠깐 순정을 노려보다가) 야, 내려! (순정을 떠민다.) 너 뭐 하는 년이 야? 안 내려?


초록색 주행신호로 바뀌는 어둠 속의 신호등.


달수 (강제로 사납게 떠민다) 야 이 미친 년아, 내려어! 


하는데, 순정, 재빨리 가스총을 꺼내 겨눈다.


달수 이건 또 뭐야? 별 미친 짓 다 하네, 이 년이…….


가스총을 뺏으려 하는 달수. 멀리서 요란한 경적 소리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잠깐 몸싸 움이 벌어지는 듯하다가, 간신히 달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순정, 가스총을 발사한다. 

달수의 얼굴에 하얗게 분사되는 가스.  



엄마 순정은 백화점에서부터 시작해 다섯명을 죽이고서야 인질을 데리고 경찰이었던 남편을 불러낸다. 순정이 남편을 불러낸건 그의 무관심 때문이다. 다음 씬 108을 보자.



S# 108 경찰차 안(EXT/N)

경찰 기동대의 봉고차에 타고 있는 성호와 반장, 그리고 정형사 등. 성호는 착잡한 얼굴 로 창밖을 내다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오성호 ……원래 아이 별명이 <오, 로라 공주>였어요. 그런데 전 그것도 잊어먹고 있었 죠. 스티커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어디서 본 듯 하다고만 생각했고, 설마 했죠.

말없이 듣고 있는 반장과 정형사.


오성호 일년 전 그날도 아이가 없어지고 날이 어두워지도록 못 찾으니까 제게 
                전화를 했더라구요. 이혼한 남편이지만, 그래도 애 아빠니까……명색이 
                경찰이니까……해결해 주겠지 라는 믿음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전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어요. 
                그냥……파출소에 신고하라고만 했죠. 지금 바빠서 못 간다고……. 
                (다시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치 못한다.)
반장          ……고마 해라. 지나간 일 자꾸 반추하면 병나요…….
                (바깥을 바라보며) 하이고, 구경났네, 구경났어…….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방송국 취재차량들. 경찰차를 추월할 듯이 달리고 있다. 

그 중에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카메라로 달리는 경찰차들을 찍는 모습도 보인다.


반장 아주 영화를 찍어라. (기사에게) 야! 뭐하노? 기자들보다 늦게 도착할래?

형사 그런데 말예요, 형수님이……,(하다가 반장의 눈치를 보고)범인이……,(하다가 성호의 눈치를 보고) 형수님이…… 왜 방송국에 연락을 했을까요?


순정은 쓰레기 매립장에서 남편에게는 죄책감을 일으키게해서 복수하는 동시에 다음 범행지에 가기위해서 미친척 연극을 한다. 씬110에서 115까지 쓰레기 매립장이 이 영화의 크라이막스이다. 여기서 순정은 아이 목소리로 계속 남편 오형사를 자극하고 관객을 자극하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상 순정이 자기 죄책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의 감정이 순정과 오형사 양쪽으로 나뉘어져 순정의 슬픔과 오형사의 안타까움이 동시에 표현이 된다. 


이 영화에서 제일 칭찬하고 싶은 장면 씬 110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아이를 잃고서 슬퍼하는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려고 한다.



S# 110 쓰레기 매립장 입구(EXT/N)


...(중략)...


소리 아빠……, 이제는 알아요……. 인생은 외로운 거라고 아빠가 하던 말……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건축폐기물이 쌓여 있는 곳에 위치해 있는 페기물 해체용 대형 크레인.
소리는 그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잘 보이지 않는 조종탑. 
매립장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는 몹시 기묘하고 괴기스럽다.


...(중략) 

경찰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노래가 멈추더니, 이번에는 아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 안녕하세요? 저는 오로라 공주예요! 경찰아저씨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 어요! 


소리의 방향을 찾기 위해 어둠 속을 살피고 있는 경찰들.


반장 도대체 어디서 이러는 거야? 보여?

정형사 저기, 크레인 조종실 같은 데요…….

경찰들은 조심스럽게 크레인 쪽을 향해 다가간다. 그 동안에도 여전히 들리는 소리.


소리 오늘은 제 생일이에요. 내 생일인데……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요. 여긴 너무 외로운 곳이거든요. 밤이 되면 너무너무 외로워요. (아이의 목소리로 흐느낀다.) 너무 무섭고 외로워요…….그래서 (갑자기 밝은 목소리로) 생일파티를 열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경찰아저씨들을 불렀어요! 우리 아빠도 경찰아저씨거든요! 아빠도 오셨을 거예요. 아빠! 어디 계세요?


크레인 쪽으로 좀더 가까이 다가간 경찰들. 건축 폐기물들 사이에 조종탑이 보이고, 그 안에 순정의 모습도 히끄므레하게 보인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ENG 카메라의 뷰 파인더 속에 담기는 순정의 모습. 


얼이 빠진듯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성호.  

반장 맞아? 자네 와이프야? 

오성호 (착잡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반장 완전히 맛이 갔네……. 

기동대장 (반장에게) 체포, 들어갈까요?

반장 인질 안전부터 확보해야지. 범인이 조종간을 잡고 있으니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

        아? 일단 범인하고 이야기를 해보면서 상황을 좀 봅시다.

오성호 제가 얘기해보겠습니다.


성호, 기동대장에게서 메가폰을 받아 앞으로 걸어 나간다. 


오성호 나야. ……나 보이지? 얘기 좀 해.


잠시 침묵이 흐른다.


오성호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얘기 좀 해.

순정 (돌연 착 가라앉은 순정의 목소리) ……당신하고는 얘기하기 싫어.

오성호 (놀라 쳐다본다.)

순정 오성호.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얘기를 해? 애 아빠라고?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말을 할수록 섬뜩한 증오심로)
그 꼴란 경찰이라면서 자기 아이도 못 지킨 인간이잖아.
오늘 내 딸, 우리 민아 생일인 거 너 기억하니? 그런데 작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 딸 민아가 죽어서, 시체로 발견됐어!
발가벗겨져서! 여섯 살짜리 아이를, 그 천사 같은 아이를,
짐승만도 못한 새끼가 죽여서 여기에 버렸어! 이 쓰레기들 틈에!
서울에 사는 온갖 인간들이 버리고 싸놓은 이 쓰레기들 틈에
내 딸을 죽여서 버려놨어! 그런데, 그 짐승만도 못한 새끼는
지금 어떻게 됐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대요!
그렇게 되는 동안 넌 뭐 했어?
넌 그날 민아 생일인지도 모르고 있었잖아!

오성호 하여튼…… 그쪽으로 갈께. 만나서 얘기해. 

(크레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순정 (갑자기 다급한 아이의 비명소리로) 아빠! 오지 마세요! 안돼요! 아빠! 


성호, 주춤 했다가 다시 앞으로 걸어가는데, 


순정 아빠아—!


아이의 울부짖음과 동시에 사람들이 놀라서 외치는 소리 들린다. 

       성호, 고개를 들어본다.


허공에 매달려 있던 김우택이 땅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히고 있다. 

        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밤하늘의 허공을 뒤흔든다. 


...(중략)...


반장 (다시 메가폰으로 소리친다.) 여하튼, 정순정씨! 저기 매달려 있는 사람 풀어주세요! 우선 저 사람 풀어준 뒤에 원하는 게 뭔지 이야기합시다! 

순정 (갑자기 쨍쨍한 소리로 외친다) 안돼요!

반장 왜요?

순정 저 변호사 아저씨 나쁜 아저씨예요! 오로라공주가 벌 줄 거예요!

반장 (성호에게) 오형사 딸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오성호 민아요. 오민아.

반장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아이에게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민아야. 착하지?

순정 (잠시 말이 없다.)

반장 민아는 착한 아이잖아, 그지?

순정 (흐느끼기 시작한다) 아빠…… 무서워……. 너무 무서워, 아빠…….


아이의 슬픈 흐느낌 소리는 계속 된다. 모두들 침묵 속에서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성호, 반장에게서 메가폰을 받아들고 앞으로 나선다.   


오성호 ……울지 마, 민아야. 울지 마……. (그는 지금 진짜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미안해…… 민아야. 아빠도 너 보고 싶었는데…… 미안해.

순정 아빠……(계속 흐느낀다) 너무 무서워요. 

오성호 이제 괜찮아, 민아야. 이제 괜찮을 거야. 내가……아빠가 잘못했어. 

(그 역시 울먹이며.) 우리 민아한테도, 엄마한테도…… 용서해 줘…….



추신: <오로라 공주>는 서민희씨의 <입질>이라는 시나리오를 방은진 감독이 각색했다.

 

** 이글은 제가 온라인 영화비평 네오이마주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5년12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

Posted by sheis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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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밀포드 2017.12.20 22:0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입질 시나리오 작가 지인입니다.
    입질과 오로라공주를 비교하셨네요.
    입질이 좋은 시나리오였다는데..ㅋ
    기회가 되면 입질 시나리오 작가를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ㅎ

이 영화에는 필자가 살아온 이력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욕설과 단어가 난무한다. 이런 욕과 은어는 ‘뺑끼통’이란 소설 이후 처음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 초등학생이었던 거 같다. 이때는 가끔 큰언니나 아빠가 읽는 소설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뺑끼통’은 진짜  읽으면서 더럽고 무서운 기분이 들었던 거 같다. -- 년도를 정확히 기억해보려고 인터넷 교보문고에 갔더니 검색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나... 네이버에도 없고, 그런 책이 있기는 했던 걸까--

‘넘버3’ 선생의 말투는 거칠다. 보통이 씨-발이고, 기분 좋으면 좆-까라고 하고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필자가 2002년 시나리오를 배운다고 설레발이 칠 때부터 배운 게 많다. 포카, 화투, .... 그리고 욕설. 사실 지금 영화를 보니 이해가 더 빠르다. 다찌마리, 쌈마이 이런 단어가 친숙하니 말이다.

요즘 같이 뱃살에 기름이 잔뜩 든 영화를 볼 때면, 이런 영화가 생각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형식만 새 것으로 만들지 말고, 내용도 새로웠으면 좋겠다. -- 내용이 새롭다는 것은 물론 새로운 소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내러티브 ? 없어도 좋다. 그렇지만 변화의 측면이 스타일에서만 나타났다는 데서 실망이 크다. 세상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던가 새로운 정신의 추구란 면에서 나타났다면 매우 기뻤을 것이다. 스타일리쉬한 장면들이 기존의 가치관을 지지하고 구조적인 억압과 편견을 강조한다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넘버 3’의 긍정적인 측면은 뭐니뭐니해도 구어체 대사의 확실한 자리매김이다. 부정적인 면은 역시나 조폭영화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여기서 조폭들은 멋지게 묘사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3류라고 칭하지 않았던가.

오늘 나는 요즘의 멋들어진 영화들을 불러놓고 ‘무대뽀 정신’을 설파하신 ‘넘버3’ 선생을 모셔 오고자 한다.

먼저 시나리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등장인물을 소개하겠다.


태주(한석규) : 도강파 깡패 넘버 3맨 
현지(이미연) : 태주애인
마동팔(최민식) : 검사
조필(송강호) : 뜨내기 조직 
지나(방은희) : 강도식의 처
강도식(안석환) : 도강파 보스
재철=재떨이(박상면) : 도강파 2인자

S#54. 여관/조필방

 꼼꼼히, 영수증을 체크하는 조필- 무릎꿇고 앉아있는 불사파.


   조필 : 생활비... 얼마 남았나?


 통장을 살피는 얼큰-


   얼큰 : 14만원 남았습니다.


 조필 표정이 밝지 않다.


   얼큰 : 저희가 막노동이라도 뛰겠습니다. 형님.


   조필 : 건달을 불한당이라고도 한다. 아닐불, 땀한... 땀을 안흘린다

          는 뜻이야. 조금만 더 버티자. 조만간 일거리가 들어오겠지.

          자, 결산하자.


 불사파, 수첩과 필기구 꺼내고, 자세를 바로 한다. 조필 정신교육을 시작한다.


   조필 :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헝그리 정신에 관해서다. 헝그리...

          배가 고프다는 뜻이지. 에이치 유 엔. (포기) 너희들이 벌써 일주

          일째, 짱개, 컵라면으로 때우는거 안다. 물론, 흰 쌀밥에 고깃

          국먹고 싶겠지. 그걸 참는것도 일종의 훈련이다.


 불사파는 조필이 떠드는 것을 부지런히 수첩에 적는다.

얼큰의 수첩엔 (불한당... 땀, 안흘린다... 헝그리... 에이치 유 엔.)등등이 적혀있다.


   조필 : 너희들, 한국 뽁싱이 잘나가다가 요즘은 왜 빌빌대는지 아냐?

          다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엔 다들 라면만 먹고도,

          챔피언 먹었다. 뽁싱뿐만 아냐. 그, 누구야, 현정화도 라면만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을 세 개나 땄다. 그말이다.

   말복 : (주책없이) 임춘앱니다. 형님


 동시에... 말복을 빰을 후려치는 조필... 두차례... 세차례... 일어나발길로 몇차례 팬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조필... 스스로 격앙되어... 방안에 있는 물건들을 총동원하여..말복에게 던지고, 패기 시작한다...

구두, 라면, 과일 간식거리, 비디오, 마침내... 더 던질게 없자.

이불장을 열더니, 두터운 이불을 꺼내 그걸 내던지는 것으로 구타의 쎄레모니가 끝난다.

정확히 48초간의 구타... 사색이 되어 차마 보지도 못하는 얼큰, 초복...

무릎이 덜덜덜 떨린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이불에 덮힌채...

코피가 터지고 엉망이 된채 비는 말복 순간적으로 난장판이 되버린 방안..

그리고 20초간의 감정조절.. 무거운 침묵이 방안을 감돈다.


   조필 : 잘들어라. 내가 하늘이 빨간색이다 하면, 그 순간부터 하늘은

          빨간색이야, 내가, 현정화라면 현정화다. 내말에 토다는 새-끼

          는 배반형이야. 앞으론 직사시킨다. (다시 강의톤으로-)암튼,

          그런... 그러니까... (무슨말을 했는지 까먹었다. 추가로 말복

          뺨을 한 대 때리고-) 너 때문에 까먹었잖아 새꺄!

   얼큰 : 헝그리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조필 : 그래 헝그리정신이 건달에겐 필요하다 그말이야. 니들... 조만

          간 잘 나갈거다. 뺀츠타고, 룸싸롱을 안방드나들 듯 하게 될거

          야. 그때도,  지금 짱개먹는 시절,  지옥훈련에 식량이 떨어져

          뱀잡아 먹던 시절을 잊어선 안된다.  끝으로 내가 늘 강조하지

          만, 모든걸 열심히, 진지하게 해야한다. 내가 늘 강조하지만..

          잠자는 개한테 햇빛은 결코 비추지 않아!



위 54씬에서 직접적으로 ‘헝그리정신’에 대해서 언급이 나온다. 그것이 깡패들 입을 통해서 나온다는 것이 사실 어불성설이다. 하여튼 돈 없고 힘 없고 가진 것 없지만 깡 하나로 버텨보겠다는 것은 본뜻과 일맥상통한다.

영화에서 인격이 부여된 주목할 만한 인물 3명을 꼽아본다면 , 태주(한석규)와 조필(송강호)과 재떨이(박상면)이다. 태주는 말 그대로 넘버3이자 햄릿형인 인간이고, 조필은 뭐든지 하면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며, 재떨이는 무조건 하는 인간이다.

태주는 아래 64씬에 나오듯이 조폭을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생활인이다. 새-끼 낳고 마누라랑 알콩달콩 살아보겠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 보통사람이다. 재떨이도 단순 무식하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사내다. 둘 다 나름대로 진지한 면이 있다. 


S364. 현지 아파트

. . .(중략). . .


   현지 : (조심스럽게-) 오빠... 우리... 아이하나 갖으면 안될까?

   태주 : 나... 꽤맸다고 했잖아.

   현주 : 실밥 풀면 돼잖아. 한 이백 주면 풀수있대.

   태수 : 아직안돼.

   현지 : 왜?

   태주 : 칼 한자루 들고 이바닥 헤멘게 십오년이야...

          넘버원 한번은 해야지... 그때까지만 참아...

   현지 : 깡패두목 되는게... 그렇게 중요해?

   태주 : 임마, 나두 너만큼, 내 새-끼 면회하구 싶은 놈이야.

          알잖아...

   현지 : 그러니까 빨리 면회하자, 응?

   태주 : 너... 건달 영화에 왜 애들이 안 나오는줄 알아? 새-끼가 있으

          면 마음이 약해 지거든.

          마음이 약해지면... 건달은 끝이라구...

   현지 : .....

   태주 : 조만간.... 넘버원이 될거야.... 쬐금만 더 기다려....

   현지 : 그럼 나는... 내인생은 뭐야? 오빠, 내 인생은 생각해 봤어?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하면서 살란 말이야!... 매일밤 오빠 기

          다리면서 내가 얼마나 조마 조마한지  알기나 해?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칼 맞았을까? 병원

          일까 싶어서... 그런걸 알기나 하냐구?  (감정이 격앙되며 눈

          물이 맺힌다. 일어나며-) 이런식으로 더는 못살아!

   태주 : (잡으며-) 왜 이래?

   현지 : (손을 뿌리치며, 외치듯-)깡패영화에 왜 아이들이 안나오는줄

          알아? 깡패들한테 미래두, 희망두 없기 때문이야! 알아?


 안방문을 부서질 듯 닫고 들어가는 현지.

 태주, 안풀린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다. 포도주를 병채로 들이키고는-

 듣던 말던, 자신의 심정을 토해내듯 큰소리로-


   태주 : 니까짓게 뭘알아!.... 집도 절도, 핏줄도 없는놈이 칼 한자루

          들고 살아온 심정을, 니가 뭘 아냐구! 시발!  난 뭐 안무서운

          지 아니? 나두 다 때려치고 싶어, 임마... 어디 바닷가같은데

          가서 새-끼 키우면서 맘편히 살구 싶다구!

          그게 맘대로 안되는걸 어떡하란 말이야!


... (중략) 


반면에, 송강호가 멋지게 연기해준 조필은 여기서 조직폭력배를 희화화한 인물이다. 이미 한차례 친구인 태주를 살려줄 정도로 인간적이고, 부하들을 아끼는 것 같다가도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인다. 이 인물은 정말로 미워할 수 없는데, 아래 72씬 중국집 장면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S#72. 중국집(밤)

. . .(중략). . .

   조필 : 짱개(중국음식)는...  이걸 마지막으로 끝내겠다.

          내일부턴, 흰쌀밥에 고기국 먹던가, 콩밥을 먹던가 둘중의 하

          나다. 너희들이 하기에 달렸다.


 묵묵히... 짱개를 먹는 불사파.


   조필 : 일 들어가기전에. 끝으로 한마디만 하겠다.  최영의라는 분이

          있다. 전세계를 구름처럼 떠다니면서, 맞짱을 뜨신분이다. 그

          양반이, 황소 뿔도 여러개, 작살내셨다.

          이런식이다. 딱, 소 앞에 서면 말이야.

          너 소냐? 나 최영의다.! 그리곤 소뿔을 탁잡고 가라데로 좆나

          게 내려치는거야. 소뿔이 부러질때까지...


 침묵속에 경청하는 불사파.


   조필 : 사람하고 붙을때도 그런식이다. (시늉하며-) 너, 존슨이냐?

          나 최영의다! 무조건 걸어가는거야! 죤슨이 겁나니까,  팔로

          막거든. 그럼 씹새-끼야, 팔은 니살 아니냐? 하면서 또 좆나게

          내려치는거야. 팔을 치울때까지... (보리차 한잔 마시고)

          그런 무대뽀 정신.... 그게 필요하다.

이 무대뽀정신은 ‘한’이라는 정서와 더불어 한국인의 정신적인 세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해서 ‘서편제’같은 영화만큼이나 이런 무식한 영화들이 한국영화답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식 영화, 유럽식 영화, ... 하다못해 미국영화까지도 특성이 있는데 한국영화는 도무지 구별이 안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 ‘넘버3’를 권해주고 싶다.

그 무대뽀정신이 오늘 우리를 만들기도 했으며, 우리를 무너뜨리게도 했다. 무대뽀정신은 결과를 중요시해서 과정을 무시하게 만든 점이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쓴 이전 세대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다시 보면서, 왜 태주가 배신을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적어도 영화속 화면에서는 그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이 나오질 않는다. 시나리오에서는 68씬에서 약간 힌트가 나오고 94씬에서 설명이 되고 있다.

이러나 저러나 어차피 삼류였다는 주인공의 고백이 웬지 허무해진다.

S#68. 수목림, 깊숙한 곳


 태주, 비장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상념에 잠긴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쟈크, 곰, 땀을 흘리며 곡괭이질, 삽질을 하고 있다. 구덩이가 완성 되었다.

 태주 POV로- 그제야 그 앞에, 재갈이 물리고, 두손이 뒤로 묶인채 꿇어

앉혀져 있는 마동팔.... 저항하다 다친 듯 붓고, 피가 굳어있고... 몰골이 엉망이다.


   자크 : 끝났습니다.....

   태주 : 차에 내려가 있어라... 이놈은 내가 파묻겠다.


 쟈크, 곰 삽한자루만 남겨놓고, 연장을 챙겨들고 숲길을 내려가 사라진

다.

 태주, 담배를 두 개피 문다. 불을 붙여, 한 개피를 마동팔의 재갈을 풀

고 입에 물려준다. 칼을 꺼내, 묶은 밧줄을 끊는다.

 마동팔, 팔목을 만지며 여유를 찾는다.

 태주, 권총을 꺼내... 총알을 한발씩 한발씩 천천히 장전한다.


   태주 : 날 원망하지 마라, 사적인 감정은 없다...

   마동팔 : (담배를 질겅거리며)좆-까는 소리 말고, 땡겨! 분명히, 이건

            알아둬라. 톱니하나 빠졌다고, 공장이 스톱하진 않아. 그게

            조직이야. 대한민국에 검사가 천백명이야.  매년  구십명씩

            생겨나고...  수사는 계속될거고.  니들은 어차피 작살나게

            되있다.


 묵묵히 노리쇠를 장전하는 태주.....


   마동팔 : 너도 톱니에 불과해...  조직이 키우는 놈한테 피를 묻히게

            하진 않지... 당장 깨져도 후회는 없다.

            3류인생이지만 열심히 살았으니까.

   태주 : 3류라고 생각하나?  너도?

   마동팔 : 그러니까 너같은 깡패새-끼들이나 다루지...

            1류들을 다뤄야... 인터뷰공세도 받고, 매스컴도 타고 하는

            데 말이야. 난 성질이 좆같아서 1류 되긴 어차피 텃지.


   태주 : 유언 끝났나?


 동시에 그대로 마동팔의 이마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 버리는 태주-

 빵- 빵- 빵- 빵- 빵-... 가차없이 무표정하게-

 정적을 울리며- 빠방- 총성이 울리고-

 놀란 새들이 푸드득...새벽하늘을 가르며 날라간다.


S#94. 현지의 아파트 안방(밤)


 묵묵히 앉아 담배를 피우며 테레비를 보고있는 태주.

 현지가... 솜옷,담배,돈을 넣은 징역보따리를 가지고 나온다. 내려놓고

태주옆에 앉는다.

 태주, 묵묵히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POV로- 텔레비젼에선 대권주자들

의 동정뉴스가 방영되고 있다.


   현지 : 솜옷하고, 담배하구... 50만원 넣었어.....

          (잠시 침묵-) 몇년쯤 기다려야 해?

   태주 : 몰라... 한 4년... (잠시 침묵)... 안죽으면... 보복할꺼야.

   현지 : 오빠... 한가지 궁금한게 있어... 지금도 51프로야?


 텔레비화면에 여전히 흐르는 대권주자들의 소식....


   태주 : 너, 대통령이 되려면 몇프로 얻으면 되는지 알아?

          50.1프로만 얻으면 끝나. 나머진 깨끗이 찌그러지는거야.

          깨끗이... 그게 세상이치지...

          (현지의 얼굴을 정감있게 매만지며-)

          아직 감이 안잡히니? 임마, 누군가를 51프로 믿는다는건,

          100프로 믿는다는 뜯이야... 49프로 믿는다는 건, 절대 안 믿

          는다는 뜻이야.. 난.. 세상에서 너만을 믿어.. 앞으로도 그럴

          꺼고.


 그제야, 태주의 51프로의 의미를 깨닫고, 바라보는 현지....

 순간적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그녀는 시인의감수성을 타고 난 것이다.....

 춘자... 태주의 가슴에 포근히 안겨온다.


   현지 : 후회안해?... 넘버1이 될 수도 있었는데....

   태주 : 세상에 넘버1은 없어 임마... 다 3류지.

          너두, 나두, 마동팔이두, 세상사람도... 모두 다 3류야.


** 이글은 제가 온라인 영화비평 네오이마주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5년12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





Posted by sheis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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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여튼 다르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난 극장에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간 적이 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그런 실례는 다시 저지르지 않았다-  

송파 신사거리를 올라가면 엄마손 백화점에 싸구려 삼류극장이 있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여름이었다. 에어콘이 고장 났던가... 그 좁은 극장 안의 땀내로 가득하고 찝찔한 느낌은 영화 그대로였다. 게다가 옆자리의 군대 휴가를 나온 비호감인 남자친구랑 날아다니는 파리...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서 그 영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96년도에 개봉한 영화를 새삼 다시 씹으려거나 이미 답안이 나와있는 영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미리 밝히자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시나리오 작가 네 명 --정대성, 여혜영, 김알아, 서신혜-- 중 한 명이 필자의 스승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재미있게 본 영화도 아니고, 시나리오에 대해 말하자면 습작생들에게 전혀 권하고 싶지 않은 스타일이다. 게다가 영화 이후로 감독은 뜨고, 네 명의 시나리오 작가와 네명의 주연배우의 삶은 정말 영화처럼 좆 같아져버렸다. 

이 영화는 같은 시기에 개봉한 한국영화와도 다르고, 그 이전의 한국영화와도 다르다. 물론 같은 감독의 다른 작품과 비슷한 점은 있지만, 그 이후의 한국영화와도 다르다. 1996에서 97년사이 한국영화 개봉작을 보면 은행나무침대, 투캅스2, 피아노맨, 지독한 사랑, 고스트맘마, 박봉건가출사건, 초록물고기, 비트, 할렐루야, 넘버3, 편지, 노는계집 창, 접속 등이 있다. 위 개봉작들은 전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같은 시기, 같은 나라에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비평가가 아니라서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짚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동시대 작품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다. 10년의 간격이 있지만 지금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영화다. 영화가 시대를 조금 앞서간 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개봉한다고 해서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다. 


2. 그래도 비웃지 말았으면 좋겠다. 

네 명의 작가가 인물 한명씩의 이야기를 구성했다는데,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두 번째로 영화를 볼 때는 투시된 캐릭터를 보고서 필자의 스승이 누구를 맡았는지 알아챘다. 그래서 피식 웃으며 혼자 영화를 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아마 이런 시나리오가 있다면 누구도 영화로 만들겠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정말로 영화화되지 않았다면 정말 뭣도 아닌 것이 될뻔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네 명의 캐릭터들이 차례로 한명씩 자조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각자의 삶에 있어서 나름대로 진지하고 진정성이라는 게 있었다. 내가 슬프게 생각한 것은 이런 각자의 이야기가 카메라를 통해서 보여졌을 때 또 한번 그것을 비틀여져 정말로 캐릭터들이 우습게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이야기는 소설가 효섭, 효섭의 애인의 남편 동우, 효섭을 짝사랑하는 민재, 효섭의 애인 보경의 시점으로 차례로 진행되는데 마치 옴니버스 영화와 같은 구성을 지닌다. 주인공 효섭부터 시작되어 차례로 어떻게 비웃음 당하는지 한번 살펴보자.

S#27. 카운터 앞

 (담배를 빼물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효섭,  옷이 붉게 얼룩졌다. 방안에선 시끌시끌한 웃음소리 들린다. 효섭, 얼굴 찡그리며 카운터로 가서 전화 수화기를 든다.)


    효 섭   (수화기 든 채로) 손님 중에 서민재씨 부탁합니다.

            (수화기를 들고 서있는 효섭 앞을 아까 짬뽕국물을 엎은 보이가 

             지나간다)

    효 섭   이봐요!

   웨이터   (긴 앞머리를 혼들며 건성으로) 죄송합니다.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효 섭   너, 그게 죄송한 사람의 태도야?

   웨이터   바쁘니까 그렇죠.

    효 섭   (전화기에 대고) 없습니까? 알았습니다.

   지배인   (다가오며) 무슨 일이야? (효섭보고 웃으며) 불편한 일이라도..?

    효 섭   도대체 종업원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거요?

   지배인   무슨...?

    효 섭   (젖은 옷을 보이며) 이거 보여요?

   지배인   (알아차리고) 아! 죄송합니다.(금고에서 만원 꺼내며) 

              세탁하셔야 겠네요.

    효 섭   내가 지금 만원땜에 이러는 줄 알아요?

   지배인   (계산원에게 짜증부리듯) 야, 한장 더 꺼내.


 (계산원 부은 얼굴로 만원 더 꺼낸다.효섭,기분이 팍 상해 지배인을 노려보며)


    효 섭   (웨이터를 뻔히 보며) 돈은 필요 없으니까, 지금당장 이 옷 

              아까처럼 해 주세요.

   지배인   손님,저희가 지금 영업중이니까......,

    효 섭   그게 내 옷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난 이옷 입고는 아무데도 

             못가니까, 원상태로 해주세요.


 (효섭, 사람들 앞에서 웃옷을 벗는다.  이때 방안에선 무슨 일인가하고 사람들이 고개를 내민다. 그 중 후배, 신발을 꿰차고 나온다.)


    후 배   선배님!


 (효섭, 런닝도 벗으려 한다)


    후 배   (효섭의 팔을 붙들며) 지금 뭐 하시는거에요?

    효 섭   넌 빠져.(런닝을 벗는다)

    후 배   옷입으세요.


 (어느 사이 나온 변상구, 앞으로 나서며)


   변상구   내버려 둬. (차가운 눈빛으로 효섭을 보며) 벗어, 벗고 싶음 

              아예 다 벗어!

 (갑작스런 변상구의 충동질에 얼굴이 굳는 효섭.) 


영화에서는 효섭이 소설이나 쓴답시고 못되먹은 치기나 가지고 사는 가부장적이고 비굴한 남자로 나온다. 특히 위 장면 #27씬에서는 호기를 부려 다른 약자에게 화풀이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시나리오에서는 효섭이 왜 화를 내는지 적어도 설명이 되어 있다. 초반의 일련의 시퀀스에서 효섭은 그의 자존심이 짓밟힌다. 두 번째 인물 동우를 우습게 보는 장면은 아래 #76씬이다. 여기서 동우는 그의 결백증적인 청결함이 조롱당한다.

S#76. 동 장소 -- 방 안

...중략...

    레 지   어땠어요?

    동 우   좋았어...

            (하며 레지를 꼬옥 껴안는다. 레지도 한번 건성으로 안고는

            옷을 입기 시작한다.)

    동 우   허탈한 표정으로 콘돔을 벗기다가 문득 경악하는 얼굴된다.

    동 우   이거 ...!

    레 지   왜요?

            (동우, 어쩔줄 몰라하며 급히 화장실로 달려간다.  물 트는

            소리, 몸을 씻는 소리. 잠시 후 화장실에서 하얀 얼굴이 되

            서 나오는 동우.)

    동 우   (화를 참으며) 콘돔이 찢어졌어! 쓰던거 가져온 거야?

    레 지   (화를 벌컥내며) 미쳤어요?

    동 우   그럼 이게 왜 찢어져요?

    레 지   (팬티 위에 치마를 올리며)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하여간 우리나라 것들은 알아줘야 돼.  좀 튼

            튼하게 만들면 어디가 덧나나. 돈이나 줘요. 3만원.

    동 우   (잠시 망설이다) 혹시 최근에 검사 받았어요?

    레 지   (블라우스 단추를 채우며) 무슨 검사?

    동 우   그러니까... 그...

    레 지   (순간 기분이 확 상해) 흥.  그런거 무서운 사람이  가만히

            잠이나 자지 왜 불러! (비웃는 듯이) 원래 쾌락은 위험 부담

            이 좀 있는거에요. 빨리 돈 줘요.

    동 우   (하얗게 질려 창녀의 팔을 잡고) 검사 받았어, 안 받았어?

    레 지   우린 불법이라 의료보험도 안되요.

    동 우   그냥 말해! 괜찮아, 아냐?

    레 지   이거 놔요. 말년에 검사는, 무슨 검사야. 그냥 이짓하다 죽

            으면 되지. 그렇게 걱정되면 당신이나 병원 가봐요 난 이렇

            게 살다가 죽을테니까. 아, 돈 안줘요?


비웃음을 당하는 세 번째 인물 민재. 이번에는 민재 그녀의 순정이 웃음거리가 된다. 민재는 효섭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애인 보경에게도 하찮은 존재이고, 민재를 향해 음욕을 품는 민수라는 남자에게도 도구로써 전락한다.

S#112. 효섭집 근처 거리

...중략...

 (떠나버리는 택시. 달리기를 멈추는 효섭, 표정 일그러진다. 숨을 헐떡

이며 효섭에게로 오는 민재.)


    민 재   저 여자누구예요?

    효 섭   ...(숨을 몰아쉬며 노려본다)...

    민 재   (더욱 효섭의 팔에 매달리며) 아니죠, 그죠? 아니죠?

    효 섭   (매섭게 민재를 떨치며) 너 왜 전화도 않구 막 오니?

    민 재   저 여자누구냐니까요!


 (거리를 걷는 사람들, 그들을 흥미롭게 구경하는 모습)


    효 섭   (소리 낮추며) 사랑하는 여자다. 이젠 됐냐?


 (꼿꼿하게 얼어붙는...)


    민 재   저한테 왜 이러시는거예요? 제가 뭘 잘못했어요, 선생님?

    효 섭   (정 떨어지는 표정) 잘못한거 없어.


 (잰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 효섭)


    민 재   그럼 난 뭐였어요? 난 선생님한테 뭐였어요?


 (효섭, 사람들의 시선으로 창피해서 어쩔줄 모른다)


    효 섭   집에가서 얘기하자.


 (민재, 사람들의 시선일랑 아랑곳없이 효섭의 뒷 꽁무니를 쫄쫄 따라오

며 집요하게 묻는다)


    민 재   선생님은 아닌데 저만 선생님을 좋아한 거예요? 그래요, 선

            생님?

    효 섭   (초조해 진다) 입 닥치라고 했다.

    민 재   전 선생님이 하라는 일은 뭐든지 다 했고 하지 말라는건 안

            했어요.  선생님한테 어울리는 여자가 될려구요.  선생님도

            그건 아실거예요!

    효 섭   ...(참을려고 기를 쓴다)...

    민 재   선생님을 위해 제 인생을 바칠 각오도 돼 있어요.  근데 이

            제와서 어떻게 이러실수 있어요? 네? 도대체 제가 선생님한

            테 못해드린게 뭐 있어요?


 (하는 순간, 눈에 불이 번쩍하며 민재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효섭. 피할

새도 없이 신음지르며 쓰러지는 민재)


    효 섭   난 이런 인간이야. 이제 알았냐?  접때도 저 여자랑같이 있

            는거 봐 놓고 그래도 모르겠냐? 멍청하게.

    민 재   (고개를 숙인채) 친구 부인이라고 그랬잖아요.

    효 섭   친구 부인이랑 술집엔 왜가냐? 그렇게도 눈치가 없냐?

    민 재   선,생,님이 저한테 거짓말 하신거에요?

    효 섭   (씩씩거리며) 난 니, 그 선생님!  선생니임!하는 소리도 지

            겹고 니꼴도 보기 싫으니까! 가!  더이상 따라오면 정말 개

            패듯이 패 버릴거니까, 알아서 해.


 (효섭, 집쪽으로 간다. 민재,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흐른다. 길 건너편에

서 효섭이 간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 민재가 보이고  팬하면 양민수가 그

런 민재를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고 서있다.) 


네명의 주인공 중에서 유일하게 비웃음 당하지 않은 것은 효섭의 애인 보경 정도다. 교양 있는 30대 유부녀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가끔 만나고, 가정도 그럭저럭 꾸리는 그녀. 시나리오상에는 그녀의 남편 동우가 자살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담배사러 나가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져 그냥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시 영화를 보는데 정말로 울화가 치밀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조롱거리가 되는게 슬프고, 소위 식자층이 말하는 ‘허위의식’ 같은 걸 말하기 위해서 또한 그걸 까발리기 위해서 비틀려져버린 극중 인물들이 안타까웠다. 

이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캐릭터들의 이율배반적인 소망이 하나씩 들어있다. 비굴한 남자 효섭은 끝내 용감하게(?) 난동을 부리고, 결백증의 동우는 어울리지 않게 더러운(?) 창녀와 정을 통하고,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었던 민재는 그걸 깨뜨리고, 숨막히는 일상의 주인공 보경은 액자를 발로 차서 찢기도 하고 가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마지막에 피가 난무하는 씬은 가장 영화적인 소망의 실천이다. 아마도 민재의 기다림과 효섭의 비극이 스쳐지나가지 않았다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뻔했다. 그래도 이들을 비웃지 말았으면 좋겠다. 

불행을 팔아먹는 소설가처럼 삼류가 되버린 우리의 현실을 또 팔아 비웃음을 사야 한다는 것이 못내 견디기 어렵다.  

영화랑 관계없이 중간에 어느 한 배우가 나온다. 아래 #19씬에서 조연으로 나온 배우는 지금은 굉장한 배우가 되었다. 이 엄청난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들은 이 영화의 주연들이 스타로 거듭나지 못한 것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도 팔아 소비가 되어버리는가... 하옇튼 인생이라는게 돼지가 우물에 빠진는 것보다 더 꿀꿀한 일임은 틀림없다.


 S#19. 관훈 갤러리 앞 계단

 (계단에 앉은 효섭과 동석)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보경, 가방을 들고 서성이며 밖의 효섭을 본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그림을 본다)


    동 석   너희 두사람도 정말 대단하다 얼마나 됐지?

    효 섭   그러는 너는 언제 국수먹게 할거냐?

    동 석   기다려라. 얼마 안있음 먹기 싫어도 먹게 돼있다.

    효 섭   돈많이 버는 여자라 좋겠다.

    동 석   미-친- 놈.  


** 이글은 제가 온라인 영화비평 네오이마주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5년12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




Posted by sheis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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