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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14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오로라 공주', 약한자의 분노 (1)

‘오로라 공주’라니. 하도 제목이 이상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작품인데, 몇 년 전 제목만 들었던 ‘입질’이 원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거슬러 올라가 ‘입질’ 시나리오를 구하는데 찾기가 어려워 청량리 홍릉자료실을 찾았다. 집에 도착할 무렵 마지막 장을 덮는데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린 필자의 과거 한 시점이 생각났다.

대학 다닐 때 학교 정문에서 한 여학생이 남자애들에게 둘러싸여서 매 맞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목격한 것은 한 10초 정도였다. 기억나는 것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과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 무슨 일인지 주춤하는 사이에 수위아저씨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여대였고 맞는 학생은 분명히 우리학교 여자애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피해자에게 버림받았던 남친의 친구들이 몰려와 때렸다는 것과 그날 그 아이가 꽤 오랫동안 맞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두 피해자가 오로라 공주였다면 필자도 지금쯤 살인을 당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작 ‘입질’은 일상에서의 약한 자의 분노가 표출을 위해서 아동유괴라는 소재가 채택이 되었고, 영화 ‘오로라 공주’에서는 피해자 부모, 특히 어머니 입장에서 억울한 심정이 표출되었다. 


#일상의 분노 ‘입질’

굳이 원본 ‘입질’을 들먹이는 것은, 

첫 번째, 영화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로라 공주’에서 이유없이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서이다. 이들이 죽어간 방법은 범죄의 편리함도 있지만 자신이 저지른 죄랑도 관련이 있었다. 연쇄살인을 당한 이들은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사소한 일들로 죽어가는데 이는 ‘입질’이 딸에 대한 복수의 시선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원본에서는 영화는 주인공 시점으로 자기 아이를 죽게한 사람들을 처단하고 있지만 사실은 일상에서 보통 사람이 약자로서 느껴왔던 겪은 여러 가지 억울함을 말하고 있다. 이 약한 자로서 느꼈던 분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동을 학대하는 어른들에 대한 분노(백화점에서 죽은 첫 번째 여자), 이기적이신 사람에 대한 분노(석고팩으로 죽은 두 번째 여자), 무정한 사람에 대한 분노(칼에 맞은 세 번째 남자), 위선에 대한 분노(교회에서 떨어진 네 번째 목사), 여자를 깔보는 남자에 대한 분노, 무심한 아빠에 대한 분노, 마지막으로 아무 힘도 없이 무능하게 딸을 보냈던 엄마 자신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다.


‘오로라 공주’에서는 거의 테러수준으로 무차별적으로 행해지지만 원본에서는 저새씨 진짜 죽여버렸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에서 주인공을 통해서 살인이 이루어진다. (전체살인이 그런것은 아니다.)


두 번째, 영화가 간과한 부분이 아쉬워서이다. 

원본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처단된 사람입장에서도 어떤 용서를 받는 느낌이 든다. 즉, 우리가 지나가 버린 과거의 특정사건으로부터, 피해자로서 가해자를 벌주고 가해자로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는 기분이 들게 한다.

‘오로라 공주’에서는 이 장점이 축소하여, 순정(엄정화)과 오형사(문성근)가 범인을 처단하면서 동시가 자기 스스로가 딸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선에서 마무리 된다. 

 ‘오로라 공주’에서는 첫 번째 살인이 계획적인 것처럼 나오는데, ‘입질’에서는 아래 씬3처럼 우발적으로 저질러진다. 맞는 아이를 보고 자기의 죽은 딸을 생각했다는 해설이 맞겠지만 주인공의 범죄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것은 자기 죄책감 때문이다. 

그 여자가 아이를 때리듯이 누군가 자기아이를 저렇게 죽일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기 자신의 무능에 대한 죄책감에서 무의식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처음 사건이 곧 두 번째 살인으로 이어진 것은 나는 이렇게 남을 도와주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을까 하는 원망의 마음이다.  보통은 사건 후반에 나오는 주인공의 터닝포인트가 입질에서는 초반의 첫 번째 살인 사건에서 생긴다.


씬3 동/ 화장실

...(중략)...

흐르는 피... 그래도 계속되는 여자의 매질

순정이 다가가 아이를 끌어당긴다.


순정 말로 하지 그러세요.


아이가 끅끅거리면서 순정을 의지하려는 몸짓이 보이자.

상관말라며 아이의 목덜미를 휙 끌어당기는 여자.

아이의 공포에 떠는 비명소리.


...(중략)...


울음을 억지로 삼키려고 아이의 입은 실룩거리는데 눈물은 끊임없이

볼을 타고 흐른다.

순정, 딸꾹거리는 아이를 천천히 밀어 화장실 밖으로 내보내더니 안에서

찰그덕하니 문을 잠근다.

순정, 청소도구실을 열고는 자루빗자루를 집어든다.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끝울음 소리와 대조되는 여자의 웃음소리.

알류미늄으로 된 자루비의 손잡이 끝 부분을 덮고있는 플라스틱 보호캡

을 벗겨내는 순정.

자루대의 날카로운 절단부분이 여자가 있는 칸을 향해 찍어진다.


이후로 순정은 본격적으로 살인에 나선다. 순정의 아이가 살해될 당시 상황을 재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관계자 인물들은 자기 못된 성품을 그대로 드러낸다. 아래 83씬을 보면 알겠지만 영화에서 갈비집에서 만난 청년은 배꼽아래가 아니라 혀에 가위를 댔어야 했다.


씬83 국도 / 밤/ 현재

다시 달리고 있는 순정의 차


개자식 좆까네... 욕 좀 했다고 이러는 거야?

순정 쫌?...쫌? 쫌이라고 했냐?


순정, 컵꽂이에 있던 캔을 들어 사납게 개자식을 향해 던져 버린다.


순정 니가 하는 조금의 욕 때문에 내 아이가 마지막 전화를 해왔을 때 어떻게

했는 줄 알아?

개자식 그렇다고 사람을 납치해? 아유 아유! (조수석을 묶인 발로 차대며) 당신

미친 사람 아니야? ... 씨이...

순정 미친년이지!...

개자식 아흐 재수 없어 씨... (차마 욕을 못하고 눈만 부라리는데)

순정 재수?


...(중략)...


개자식 씹쌔끼. 눈깔은 빼서 사탕 빨아 먹을려나...


순정, 차를 세우더니 열쇠를 뽑는다. 아직도 멀어지는 봉고를 흘낏거리는

개자식의 머리를 마구 찍어대는 순정.


순정 잘 보라고 했지. 잘 보라고! 봤어? 봤어? 봤냐구!


개자식의 귀 뒤로 피가 흘러내린다.

꼼꼼하게 옷자락으로 키에 묻은 피를 닦는 순정


순정 재수가 뭔 줄 아냐?... 너 같은 놈에게 욕 얻어먹는 걸 재수 없다고 하는

거고... 니가 내게 붙잡힌 건 횡재수라고 하지.


...(중략)...


가해자(살인당한 사람들)로서 피해자에게 용서받는 느낌은 전체 시나리오를 덮은 후에 느낄 수 있다. 한명씩 죽일 때 느꼈던 주인공의 분노가 아이러니하게도 죽임을 당한 자의 입장에서 이제 용서받았다는 후련한 기분을 갖게 한다. 


#엄마의 분노 '오로라 공주'

이제 영화로 돌아가서 ‘모성애’로 판정받은 ‘오로라 공주’를 다시 살펴보자.

전체적으로 구성이 좀 헐겁고 대사가 너무 감상적으로 흘러버린 점이 있지만 원작에 비해서 진지해지고 피해자 가족의 심리를 잘 다뤘고 세상을 향한 여러 가지 상관없었던 분노가 한 아이와 엄마의 분노로 집약이 되었다.

그리고 원본에서는 정작 유괴당한 아이의 시점이 빠져있어서 사실 아이 유괴라는 핵심이 소재로만 사용이 되었는데, ‘오로라 공주’에서는 이 아이의 쓸쓸한 느낌이 잘 나타났다.

이 영화는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이는가에 집중하여 볼 것이 아니라 왜 죽였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처음부터 무차별하게 사람들을 죽여가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오로라 공주’가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 뚝심있게 밀고 가는 것 같으면서도 산만한데 그 점이 참 아쉽다. 

완성도를 높였다면 틀림없이 ‘친절한 금자씨’보다 훨씬 좋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금자가 복수를 하지만 영화가 끝나도 백선생도 금자도 아무도 관객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 백선생은 끝까지 뉘우치지 못했고, 금자도 사실 뉘우쳤다고 보기 힘들다. 금자가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유괴를 도와주어 결과론적으로 죽게 한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금자가 백선생을 처단하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옥에 있었지만 참회는 커녕 백선생에 대한 복수만 생각했고, 나와서 손가락을 절단하는 장면이 있지만 이것은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줄뿐이고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출감후 나쁜여자처럼 구는 것도 사실상 관객의 동정을 자아내지 진짜 나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도 항상 뭔가 개운하지 않았던 것이 있는데 바로 피해자 설정이 틀렸기 때문이다. 금자씨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여자가 어떻게 복수하는지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의도도 사실 별로였다. 여자의 복수나 아동살해의 피해자 심리는 차라리 ‘오로라 공주’가 낫다.

‘오로라 공주’ 의 아래 씬19을 보면 순정이 느끼는 괴로움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S# 19 순정의 집(INT/N)


디졸브 화면에서 시작하면 역시 모니터 화면. 여섯 살 정도의 아이를 찍은 홈 비디오 

화면이 틀어져 있는 어느 TV 모니터. 아이는 머리에 고깔을 쓰고 재롱 섞인 동작을 섞어 열심히 동요를 부르고 있다.


소리 아빠……. 이제는 알아요. 인생은 외로운 거라고 아빠 가 해준 말, 전에는 몰랐지 만…… 저녁에 뜨는 별이 왜 슬퍼 보이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순정의 집 내부. 불은 꺼져 있지만, 어느 한 곳에서 불빛이 새어나와 아주 어둡진 않다.모니터는 혼자 켜져 있다. 빈 집에 아이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 들려오기 시작하고. 

그 소리를 따라보면 천천히 드러나는 불빛이 흘러나오는 욕실. 반쯤 열려 있는 문. 

물 밖으로 머리만 내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순정의 모습이 멀리 잡힌다. 


순정 …… 저녁에 뜨는 별이 왜 슬퍼 보이는지…….


아이의 노래가 끝나자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허공을 응시하던 순정, 갑자기 물속으로 내려간다. 마치 익사한 듯 물이 넘치는 빈 욕조.

아이의 다른 모습이 보이는 TV 화면. 장난치며 돌아다니고 있다.


가까이 잡은 욕조의 수면. 일렁이는 검은 머릿결.

순간 쑥 솟구치는 순정의 머리. 막혔던 숨을 거칠게 내뿜는, 물에 젖은 그녀의 얼굴. 

눈빛만 차갑게 번득인다. 


위 씬에서 처음 나오기 시작한 아이가 부른 노래는 마지막 까지 끈질기게 반복이 되는데 관객은 짜증이 나면서도 피해자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아이의 엄마는 그 노래소리가 반복되는 것처럼 계속 아이의 죽음을 기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아이는 한 번 죽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엄마의 마음속에서 매일 하루에 수천 번씩 죽는다.


엄마 순정은 그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 분열을 일으킨 사람처럼 아이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죽인 사람 시체에 오로라 스티커를 붙인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에 아이의 목소리랑 스티커가 분위기를 더욱더 그로테스크하게 만들고 있다. 아래 씬 60에서 엄마는 아이를 대신해 자기를 버려둔 택시기사를 처단한다.


S# 60 택시 안(EXT/N)


...(중략)

순정이 돌아보면 뒷좌석 중간에 놓여 있는 껌 바구니.

껌 하나를 집어 들고 문득 고개를 들어보는데,


일루젼. 뒷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여섯 살 민아.

손에는 가방을 꼭 붙들고, 우는 듯 웃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순정, 천천히 껌을 까서 입에 넣으며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뜨고 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뒷자리. 


순정 (부드럽게)아저씨. 요즘도 첫 손님을 여자로 태우면 재수 없어요?

달수 에이, 그런 거……사실 미신이지. 근데, 그 미신이란 것도 근거가 다 있는 거야. 내가 얼마 전에 사고를 당했는데, 그날 첫 손님을 여자를 받았거든. 왠지 기분이 진짜 이상하더라고. 

순정 (웃으며)오늘도 기분이 이상하셨어요?


대답 없이 순정을 돌아보고 히죽 웃는 달수의 얼굴. 


그의 사진이 붙은 개인택시 등록증 인서트. 


뒤를 힐끗 돌아보는 순정. 


흔들리는 뒷자리에 앉아서 초조하게 쳐다보는 민아의 얼굴.

순정 아저씨, 만약에요…… 애가, 한 여섯 살 먹은 어린애가……택시 태워달라고 하면 태워주시나요?

달수 그러엄. 애는 사람 아닌가?


택시는 이제 넓은 사거리의 신호등에 멈춰 섰다. 텅 빈 사거리.


정면으로 보이는 붉은 신호등.


순정 근데 애가 택시비가 모자라면요?

달수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듯 순정을 쳐다본다) 

순정 애가 택시비가 한 이 천원 모자라거든요? 딱 이 천원. 그래도 집까지 데려다 주시 나요?

달수 지금 뭐하자는 거요?

순정 (다시 뒤를 힐끗 돌아보고 뭔가 쫓기듯)아이가요, (아이 목소리로)아저씨……, 저 차비 가 모자라는 데요…… 


일루젼. 순정의 목소리에 겹치듯 뒷자리의 민아가 애원하듯 간절하게 말한다.


민아 아저씨, 저 차비가 모자라는 데요……. 그래도 집에까지 데려다주면 안돼요?


순정 ……그래도 집에까지 데려다주면 안돼요? 예? 아저씨…….

달수 뭐야, 이거? (잠깐 순정을 노려보다가) 야, 내려! (순정을 떠민다.) 너 뭐 하는 년이 야? 안 내려?


초록색 주행신호로 바뀌는 어둠 속의 신호등.


달수 (강제로 사납게 떠민다) 야 이 미친 년아, 내려어! 


하는데, 순정, 재빨리 가스총을 꺼내 겨눈다.


달수 이건 또 뭐야? 별 미친 짓 다 하네, 이 년이…….


가스총을 뺏으려 하는 달수. 멀리서 요란한 경적 소리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잠깐 몸싸 움이 벌어지는 듯하다가, 간신히 달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순정, 가스총을 발사한다. 

달수의 얼굴에 하얗게 분사되는 가스.  



엄마 순정은 백화점에서부터 시작해 다섯명을 죽이고서야 인질을 데리고 경찰이었던 남편을 불러낸다. 순정이 남편을 불러낸건 그의 무관심 때문이다. 다음 씬 108을 보자.



S# 108 경찰차 안(EXT/N)

경찰 기동대의 봉고차에 타고 있는 성호와 반장, 그리고 정형사 등. 성호는 착잡한 얼굴 로 창밖을 내다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오성호 ……원래 아이 별명이 <오, 로라 공주>였어요. 그런데 전 그것도 잊어먹고 있었 죠. 스티커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어디서 본 듯 하다고만 생각했고, 설마 했죠.

말없이 듣고 있는 반장과 정형사.


오성호 일년 전 그날도 아이가 없어지고 날이 어두워지도록 못 찾으니까 제게 
                전화를 했더라구요. 이혼한 남편이지만, 그래도 애 아빠니까……명색이 
                경찰이니까……해결해 주겠지 라는 믿음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전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어요. 
                그냥……파출소에 신고하라고만 했죠. 지금 바빠서 못 간다고……. 
                (다시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치 못한다.)
반장          ……고마 해라. 지나간 일 자꾸 반추하면 병나요…….
                (바깥을 바라보며) 하이고, 구경났네, 구경났어…….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방송국 취재차량들. 경찰차를 추월할 듯이 달리고 있다. 

그 중에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카메라로 달리는 경찰차들을 찍는 모습도 보인다.


반장 아주 영화를 찍어라. (기사에게) 야! 뭐하노? 기자들보다 늦게 도착할래?

형사 그런데 말예요, 형수님이……,(하다가 반장의 눈치를 보고)범인이……,(하다가 성호의 눈치를 보고) 형수님이…… 왜 방송국에 연락을 했을까요?


순정은 쓰레기 매립장에서 남편에게는 죄책감을 일으키게해서 복수하는 동시에 다음 범행지에 가기위해서 미친척 연극을 한다. 씬110에서 115까지 쓰레기 매립장이 이 영화의 크라이막스이다. 여기서 순정은 아이 목소리로 계속 남편 오형사를 자극하고 관객을 자극하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상 순정이 자기 죄책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의 감정이 순정과 오형사 양쪽으로 나뉘어져 순정의 슬픔과 오형사의 안타까움이 동시에 표현이 된다. 


이 영화에서 제일 칭찬하고 싶은 장면 씬 110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아이를 잃고서 슬퍼하는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려고 한다.



S# 110 쓰레기 매립장 입구(EXT/N)


...(중략)...


소리 아빠……, 이제는 알아요……. 인생은 외로운 거라고 아빠가 하던 말……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건축폐기물이 쌓여 있는 곳에 위치해 있는 페기물 해체용 대형 크레인.
소리는 그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잘 보이지 않는 조종탑. 
매립장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는 몹시 기묘하고 괴기스럽다.


...(중략) 

경찰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노래가 멈추더니, 이번에는 아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 안녕하세요? 저는 오로라 공주예요! 경찰아저씨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 어요! 


소리의 방향을 찾기 위해 어둠 속을 살피고 있는 경찰들.


반장 도대체 어디서 이러는 거야? 보여?

정형사 저기, 크레인 조종실 같은 데요…….

경찰들은 조심스럽게 크레인 쪽을 향해 다가간다. 그 동안에도 여전히 들리는 소리.


소리 오늘은 제 생일이에요. 내 생일인데……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요. 여긴 너무 외로운 곳이거든요. 밤이 되면 너무너무 외로워요. (아이의 목소리로 흐느낀다.) 너무 무섭고 외로워요…….그래서 (갑자기 밝은 목소리로) 생일파티를 열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경찰아저씨들을 불렀어요! 우리 아빠도 경찰아저씨거든요! 아빠도 오셨을 거예요. 아빠! 어디 계세요?


크레인 쪽으로 좀더 가까이 다가간 경찰들. 건축 폐기물들 사이에 조종탑이 보이고, 그 안에 순정의 모습도 히끄므레하게 보인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ENG 카메라의 뷰 파인더 속에 담기는 순정의 모습. 


얼이 빠진듯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성호.  

반장 맞아? 자네 와이프야? 

오성호 (착잡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반장 완전히 맛이 갔네……. 

기동대장 (반장에게) 체포, 들어갈까요?

반장 인질 안전부터 확보해야지. 범인이 조종간을 잡고 있으니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

        아? 일단 범인하고 이야기를 해보면서 상황을 좀 봅시다.

오성호 제가 얘기해보겠습니다.


성호, 기동대장에게서 메가폰을 받아 앞으로 걸어 나간다. 


오성호 나야. ……나 보이지? 얘기 좀 해.


잠시 침묵이 흐른다.


오성호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얘기 좀 해.

순정 (돌연 착 가라앉은 순정의 목소리) ……당신하고는 얘기하기 싫어.

오성호 (놀라 쳐다본다.)

순정 오성호.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얘기를 해? 애 아빠라고?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말을 할수록 섬뜩한 증오심로)
그 꼴란 경찰이라면서 자기 아이도 못 지킨 인간이잖아.
오늘 내 딸, 우리 민아 생일인 거 너 기억하니? 그런데 작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 딸 민아가 죽어서, 시체로 발견됐어!
발가벗겨져서! 여섯 살짜리 아이를, 그 천사 같은 아이를,
짐승만도 못한 새끼가 죽여서 여기에 버렸어! 이 쓰레기들 틈에!
서울에 사는 온갖 인간들이 버리고 싸놓은 이 쓰레기들 틈에
내 딸을 죽여서 버려놨어! 그런데, 그 짐승만도 못한 새끼는
지금 어떻게 됐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대요!
그렇게 되는 동안 넌 뭐 했어?
넌 그날 민아 생일인지도 모르고 있었잖아!

오성호 하여튼…… 그쪽으로 갈께. 만나서 얘기해. 

(크레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순정 (갑자기 다급한 아이의 비명소리로) 아빠! 오지 마세요! 안돼요! 아빠! 


성호, 주춤 했다가 다시 앞으로 걸어가는데, 


순정 아빠아—!


아이의 울부짖음과 동시에 사람들이 놀라서 외치는 소리 들린다. 

       성호, 고개를 들어본다.


허공에 매달려 있던 김우택이 땅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히고 있다. 

        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밤하늘의 허공을 뒤흔든다. 


...(중략)...


반장 (다시 메가폰으로 소리친다.) 여하튼, 정순정씨! 저기 매달려 있는 사람 풀어주세요! 우선 저 사람 풀어준 뒤에 원하는 게 뭔지 이야기합시다! 

순정 (갑자기 쨍쨍한 소리로 외친다) 안돼요!

반장 왜요?

순정 저 변호사 아저씨 나쁜 아저씨예요! 오로라공주가 벌 줄 거예요!

반장 (성호에게) 오형사 딸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오성호 민아요. 오민아.

반장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아이에게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민아야. 착하지?

순정 (잠시 말이 없다.)

반장 민아는 착한 아이잖아, 그지?

순정 (흐느끼기 시작한다) 아빠…… 무서워……. 너무 무서워, 아빠…….


아이의 슬픈 흐느낌 소리는 계속 된다. 모두들 침묵 속에서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성호, 반장에게서 메가폰을 받아들고 앞으로 나선다.   


오성호 ……울지 마, 민아야. 울지 마……. (그는 지금 진짜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미안해…… 민아야. 아빠도 너 보고 싶었는데…… 미안해.

순정 아빠……(계속 흐느낀다) 너무 무서워요. 

오성호 이제 괜찮아, 민아야. 이제 괜찮을 거야. 내가……아빠가 잘못했어. 

(그 역시 울먹이며.) 우리 민아한테도, 엄마한테도…… 용서해 줘…….



추신: <오로라 공주>는 서민희씨의 <입질>이라는 시나리오를 방은진 감독이 각색했다.

 

** 이글은 제가 온라인 영화비평 네오이마주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5년12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

Posted by sheis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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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밀포드 2017.12.20 22:0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입질 시나리오 작가 지인입니다.
    입질과 오로라공주를 비교하셨네요.
    입질이 좋은 시나리오였다는데..ㅋ
    기회가 되면 입질 시나리오 작가를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