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골프 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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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운   어. 앉어 희수야. (웃으며) 갑자기 와서 돈을 갚으라니까, 저도 방법이 없잖아요. 


너무 자연스럽게 사정 얘기를 하는 게 더 민망한 희수, 


최여사   (싱긋 웃으며) 지금 당장은 백만원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괜찮겠어요?


백만원? 이렇게 선뜻? 희수, 뭐라고 대답 할지 몰라 병운을 흘끗 쳐다본다. 


병운   (당당하게) 뭐, 대충 그 정도도 괜찮지? 

희수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 


최여사, 검은 양복의 남자에게 손짓을 하면 남자 밖으로 나간다. 


병운   웬만하면 이렇게 와서 돈 달라고 할 친구가 아닌데,, 

        사정이 딱한가봐요.. 좀 도와 주세요.. 


최여사, 희수를 물끄러미 본다. 

희수, 뻘쭘해서 시선을 돌린다. 


최여사   가여워라.. 이렇게 이쁜데.. 

병운     아, 여사님 드리려고 선물 가져 왔어요. 짜잔. 


하면서 꺼내 놓는 건, 99% 카카오 쵸코렛, 희수의 차에서 슬쩍 한 것. 

희수, 병운을 흘겨 보는데, 


최여사   (초코렛 통을 만지작 거리며) 99%..... 어쩐지 슬프네..

병운     사는게 그러네요. 제가 여사님 한테 딱 1% 모자란 것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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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간을 딱 세 명 정도 알고 있다. 


첫 번째 K군. 이 남자의 나와바리는 별다방이다. 강남점 충무로점 신촌점 등등의 별다방을 노트북 하나와 카메라 하나를 들고 다니며 하루종일 죽때린다. 물론 여자 알바생과 농담따먹기는 필수과정이다. 그런 K군 연애할 때는 5천원짜리 달랑 하나들고 돌아다니며 애인한테 빌붙는 주제에 가리는 것은 많다. 영화속 남자처럼 햄버거는 꼭 커팅을 해달라고 하고 세트에 음료수도 다른 것으로 바꿔 먹는다. 라면을 먹을지언정 커피는 꼭 제대로 된 것을 먹는 이들. 돈만 생기면 자기치장에 바빠 정작 사람 만나도 밥값은 못 내나보다. 남한테 빌붙기를 십수년. 급기야 결혼해서 와이프에게 빌어먹더니 결국에 바람피다가 이혼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두 번째 D군. 모임에서 만나면 내 이름을 수십번도 더 부른다. 누구야 누구야. 말끝마다 이름을 불러대며 친근함을 표시하는데 솔직히 싫지는 않다. 만난지 한시간 안이면 생판 남도 금방 누나 형 동생을 만드는 막강 친화력을 가진 D군. 술자리에서 ‘나한테 시집와라 평생 글만 쓰게 해줄게’ 해서 사람 놀래키고는 바로 몇 분 후에 또 다른 여자한테 열올리고 있다. 친분을 과시하며 가끔 전화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때에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항상 2% 진심이 부족해 보이지만 다른 허허족들이 반백수로 남한테 빌붙어 사는 것에 비해서 나름 직업을 가지고 사는 D군. 아마도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현실은 외면할 수 없었나 보다.


세 번째 M군. 이분 또한 만만치 않은데 사람은 좋았다. 바람기도 없고 진실함도 있어보였다. 내가 지어준 별명이 ‘인의 장막’이었는데 정말로 만나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을 초월한다. 하루저녁에도 두탕씩은 뛰는 것 같았다. 특이점이라면 그 ‘인의 장막’을 치는 인간들이 전부 남자라는 것. 직종도 다양한 남자들은 M군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 사람이 좋았다. 마음이 통하는 느낌. 참 좋았다. 문제는 경제관념. 분명히 경제력이 아닌 경제관념이다. 몇 번 술자리동안에 술값 한번 내는 것을 못봤다. 게다가 술먹자고 불러내놓고 딴 사람한테 술값 계산시키는 거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멋진하루>에는 이런 K, D, M을 전부 합쳐놓은 것 같은 남자가 나온다. 조병운. 350만원을 당장갚으라며 달려온 옛애인에게 인상 한 번 구기지 않는다. 오히려 옛애인에게 무슨일이 있었냐며 걱정까지 해주는 여유를 보이시며 애인차를 얻어타고 이여자 저여자를 만나며 돈을 갚으러 또 돈을 꾸는 남자.


영화를 보다보니 진실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던 K군보다는 나은듯 싶었다. 능력만 있으면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볼만한 성품을 지닌 M군에 가까운 것 같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이 없으면 죄인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 그것을 어쩌랴. 이 남자를 더 처량하게 하는 것은 돈을 꾸러 다니거나 애인차를 얻어 타는 것이 아니다. 주차비를 내야할 때, 찻값을 계산할 때, 패스트푸드점에서 자기 것만 달랑 계산하고 돌아서는 옛애인 앞에서 지갑을 꺼내야 할 때다. 


#23.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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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   (만원짜리 하나를 카운터에 내려 놓으며) 빅맥만 계산해 주세요 

병운   치사하게...


cut to 


햄버거가 담긴 쟁반을 들고 걸어오는 병운. 

희수, 먼저 가서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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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는 소위 그 품위 유지비는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아마도 더 가난하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가 몰락한(?) 중산층을 그쯤에서 표현한 것 같다. 전세도 빼고 달랑 가방 하나들고 이집저집을 전전하는 초라한 행색의 그.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를 봐도 대충 돈 몇만원만 들고 다니는 게 뻔히 보이는 것을. 하여튼 이 남자 그래도 좋다고 쉴새없이 떠든다. 이런 허허족의 술책에 빠져들지 않는 여자 희수. 그녀는 무슨 일인지 일년이나 지나 시점에서 어떻게든 돈을 받겠다고 우격다짐으로 나온다. 영화에는 약간 다른 씬 하나를 보겠다.


#54.견인차 보관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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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   무슨 소리야?

병운   나 없는 동안에도 죽- 잘 했을거라구.. 

        니가 뭘 했건,, 그게, 최선이었을거야..  


희수,,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다.. 


병운   안심이 돼서 좋아 한다니, (피식) 취향, 심하게 마이너 해.. 그치? 

희수   .. 왜,, 다 잘 사는거야?

         왜,,? 어떻게 그렇게,, 다들,, 웃는거야? 

병운   응? 무슨 말이야? 

희수   병운,, 씨.. 말야.. 

         나,,, 병운씨 좋아했지만,, 결혼 상대론 아니라고 생각했어..

병운   (농담) 내가 어디가 어때서?

희수   (진지하게) 당연 한 거라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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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병운을 버렸던 것처럼 결혼상대자도 버렸다며 그게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희수. 미즈넷같은 삼류소설에나 나올법한 온갖 이야기가 나오는 사이트에서 손꼽는 최악의 남자리스트를 보면 바람피는 남자, 무능력한 남자, 마마보이인 남자, 여자 때리는 남자, 등등이 있다. 그중에 미혼여성이 손꼽는 리스트에 드는 게 바로 ‘돈 꿔가는 남자’이다. 나 아는 사람 하나도 몇십만원을 꿔줬다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내가 얼마나 길길이 뛰었던지.  어째서 차까지 몰고다니면서 부모님 번듯하게 살아계시는데 돈을 꿔갈까. 그리고 갚지도 않고 잠수를 타는 걸까. 이게 영화에서 보면 병운의 처지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게 희수의 입장에서 보면 병운은 헤어나지 못하는 아주 아주 나쁜 꿈이나 마찬가지다. 희수는 자기도 직장을 관두고 형편이 좋지 못하지만 뭐하고 사는지 여기저기 빈대붙으면서도 헤헤거리는 병운이 밉게 보인다. 그래서 왜 이렇게 잘살고 있는 건지 왜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건지 이해가 안가고 급기야는 화를 낸다. 사실 돈 좀 없다고 이마에 내천자 그리고 다 산 사람처럼 굴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나도 좋은게 좋은 거라는 허허족이 되가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 이글은 제가 네이버카페 월간시나리오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9년11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





Posted by sheis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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